새 정부가 자영업자 대출 부실화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검토하던 ‘배드뱅크(Bad Bank·부실채권전담처리은행)’ 설립에서 손을 떼는 분위기다. 대신 채무조정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대출 만기 연장때문에 숨어있는 ‘부실 폭탄’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자영업자대출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3일 내놓은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 과제’에는 배드뱅크 설립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인수위는 부실화 우려 대출까지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긴급 구제식 채무 조정을 추진하고 제2 금융권→은행 대환 대출 보증을 신설하는 등 맞춤형 금융을 공급하겠다고만 밝혔다.
앞서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지난달 분과별 업무 보고 당시 배드뱅크 설립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주문했지만 최종안에는 오르지 않은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인수위가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고 있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때 생긴 유암코(연합자산관리),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출범한 서민금융진흥원 등 비슷한 업무를 하는 기관이 있는데 조직을 더 추가하는 것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 철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인수위는 유암코와 같은 배드뱅크 대신 채무조정기금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나 소상공인진흥공단에 채무조정기금을 설립해 기존 조직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대출 부실화 문제는 상시적인 위험이 아니므로 기존 조직을 활용하는 편이 더 낫다는 금융권 제언을 인수위가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자영업자대출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 기업대출 잔액은 전월 말 대비 6조6486억원 늘었다. 이 중 3분의 1 이상인 2조4919억원이 자영업자대출이다. 자영업자대출은 지난해 12월 9739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올해 1월에는 1조6854억원, 2월에는 2조1097억원, 3월에는 2조362억원 늘어나는 등 증가세가 확연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말 300조원에 못 미쳤던 대출 잔액은 4월 308조447억원까지 불어났다.
인터넷전문은행까지 자영업자대출 영업에 뛰어들면서 이런 추세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인터넷은행 중 자영업자대출 상품을 가장 먼저 선보인 토스뱅크의 경우 출시 한 달 만에 잔액이 2000억원을 넘겼다. 카카오뱅크도 올 4분기 중 자영업자대출 상품을 공개할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요 시중은행은 자영업자대출 부실화에 대비해 대손 준비금·충당금을 상당 폭 쌓아둔 상황이지만 우려가 현실이 될 경우 금융권에 미칠 파장이 결코 작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