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한강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고 있다. 먹고살기 바빴던 개발시대에는 한강의 가치를 제대로 몰랐다. ‘집은 남향이 최고’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한강을 등진 채 지은 아파트가 지금도 서울 곳곳에 남아 있다. 20여년 전만 해도 아파트를 사고팔 때 한강 조망권은 큰 프리미엄이 되지 못했다. 학군이나 교통, 생활 여건이 좋은 아파트가 더 비싸게 팔렸다. 지금은 다르다. ‘한강뷰’란 수식어만 붙으면 아파트든 카페든 빌딩이든 가치가 오른다. 여러 규제로 한동안 지체됐던 한강변 아파트 단지의 재개발이 본격화되면 이런 추세는 더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강이 공공재인 만큼 한강 조망권도 공공재다. 한강변에 산다고 독점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누구든 한강을 조망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편적 접근권이 보장돼야 한다. 한강변 아파트 단지 재개발에는 이런 철학이 반영돼야 한다. 강변 거주자들의 한강 조망권을 박탈하자는 게 아니다. 적절한 규제와 공간 활용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자는 이야기다.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 단지를 재개발하면 대지를 기부채납 받는다. 이곳엔 공원이나 어린이집, 노인복지관 등을 주로 짓는다. 공공시설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가까운 아파트 주민들이 주로 이용한다. 일부라도 이런 시설 대신 공공도서관을 지으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 한강변 아파트 단지라면 한강뷰 도서관을 짓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강변 아파트 재건축을 허가할 때 한강 조망이 가능한 곳의 대지를 기부채납 받고 이곳에 공공도서관을 지으면 된다. 대형 건축물일 필요는 없지만, 지역의 자랑이 될 만큼 멋있어야 한다. 주민들의 거부감도 줄고 한강변 스카이라인도 아름다워진다. 내부에 넓은 통창과 테라스 공간을 설치해 한강 조망권을 극대화하는 건 필수다.
도서관은 접근성 좋고 책 많고 공부하기 편하면 되지 조망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럴 돈으로 한 곳이라도 더 많이 도서관을 짓고 장서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옳지도 않다. 지금까지의 도서관 정책은 인구 대비 도서관 숫자와 장서 수 같은 양적 지표와 편의성에만 집중했다. 개발도상국이나 중진국 시절에는 타당한 정책이었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건축물의 아름다움, 공간의 쾌적함, 환경친화성, 외부 조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집은 무조건 남향이어야 한다는 것만큼이나 도서관에 조망권은 사치라는 생각도 낡은 고정관념일 수 있다.
도서관에 대한 인식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청운문학도서관은 소문난 핫플레이스다. 장서가 많거나 규모가 커서가 아니라 한옥 설계를 도입한 공간 자체가 아름다워서다. 일본 규슈의 다케오시립도서관도 소박하지만 사람과 자연을 품은 건축으로 연간 100만명이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부산 사하구 다대도서관은 바다 조망에 방점을 두고 설계한 최고의 오션뷰 도서관으로 사랑받고 있다. 서울에 한강뷰 도서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광진구의 광진정보도서관과 서울생각마루는 한강 조망으로 지역 주민의 자랑거리가 된 대표적 도서관이다. 이곳을 방문하면 한강뷰 도서관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왜 필요한지 금세 알 수 있다.
한강변 같은 공간은 한번 개발되면 수십년간 큰 변화를 주기 어렵다. 도시 설계와 인허가 단계부터 공공성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서울에서 한강뷰 도서관 짓기 움직임이 활기를 띠면 해안에는 오션뷰 도서관, 내륙엔 레이크뷰나 마운틴뷰 도서관이 생겨날 것이다. 대한민국이 천혜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서관이 많은 나라로 기억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송세영 문화체육부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