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수처, 손준성 재판서 혐의 입증 못하면 문 닫을 각오해야

입력 2022-05-05 04:0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4일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무려 8개월을 끌어온 수사였다. 야당 대선 후보 내외, 야당 국회의원 2명, 현직 검사 5명 등 입건한 피의자 면면도 화려했다. 공수처는 정치권에서 폭로성 의혹 제기가 나온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달려들었고, 진행 중이던 사건들을 뒷전에 미룬 채 전체 검사의 절반 이상을 투입해 수사팀을 꾸렸다. 여운국 차장이 직접 주임검사를 맡아 총력전을 펴온 수사의 결과물은 허탈할 정도로 초라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 피의자 대부분이 무혐의 처분됐다. 이런 수사를 감당할 역량이 안 되는 무능한 집단이거나, 애당초 혐의 입증보다 여권 입맛에 맞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시작한 수사였다는 해석 말고는 이 결과를 설명할 길이 없다.

기소된 이는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뿐인데, 그 경위도 석연찮다. 손 보호관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여권 인사 고발장을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주고받은 혐의를 받아왔다. 공수처는 선거법 위반과 공무상기밀누설 등에 해당한다며 그의 체포영장을 한 차례, 구속영장을 두 차례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심지어 기소의 적정성을 사전 심의하는 공소심의위원회는 수사기록을 검토한 결과 불기소하라고 권고했다. 문제의 고발장을 누가 작성했는지조차 특정하지 못했을 만큼 증거가 빈약해서였다. 그런데도 공수처가 기소를 강행하자 과연 법정에서 혐의를 입증할 수 있겠냐는 회의론이 벌써 일고 있다. 그 배경에는 선거철에 야당 겨냥 수사를 잔뜩 벌려놓고 한 명도 기소하지 못할 경우 조직에 쏟아질 비난을 우려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 만약 재판에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수사력 부재와 정치적 편향성에 더해 조직 이기주의로 기소권을 남용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그리되면 공수처는 문을 닫아야 한다.

공수처는 출범한 지 1년3개월이 넘었지만 한 번도 존재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다. 거꾸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통신조회를 벌여 인권침해 기관이란 오명을 얻었다. 현 정권은 검찰권을 선택적 정의라고 비난하며 공수처를 세웠는데, 그간의 수사를 돌아보면 공수처 역시 선택적 정의에 충실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여권의 독주로 검수완박이 이뤄진 마당에 형사사법체계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할 기관이 이런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비극적이다. 하루빨리 근본적인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