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당의 ‘입법 독주’와 이를 저지하려는 소수당의 육탄전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과정 곳곳에서 무시되거나 무력화됐다.
검수완박을 밀어붙인 더불어민주당은 ‘안건조정위원회 강제 종료’와 ‘회기 쪼개기를 통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무력화’ 등 꼼수를 동원해 선진화법을 이리저리 피해 갔다. 검수완박 저지에 나선 국민의힘은 고성과 욕설뿐 아니라 육탄전도 불사하며 과거 ‘동물국회’의 모습을 재연했다.
국회 내 물리적 충돌은 2019년 4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문제를 놓고 벌어졌던 폭력 사태 이후 3년 만이다.
검수완박과 관련한 선진화법 위반 논란은 민주당이 ‘위장 탈당’을 통해 국민의힘이 신청한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면서 촉발됐다. 지난달 26일 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겠다고 국민의힘에 통보한 것이 발단이었다. 강행 처리를 막으려는 국민의힘은 최장 90일까지 쟁점 법안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한 안건조정위 구성을 요청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미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민주당 소속이던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만든 상태였다. 여야 3명씩 총 6명으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에 무소속이 된 민 의원이 야당 몫으로 참여함으로써 사실상 ‘4대 2’가 됐다. 6명 중 4명이 찬성하면 안건조정위는 즉시 종료된다. 민주당 의원 3명과 민 의원은 곧바로 안건조정위 강제 종료 수순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검수완박 법안은 안건조정위가 소집된 지 단 17분 만에 안건조정위를 뚫고 법사위 전체회의로 넘어갔다. 선진화법상 안건조정위는 원래 소수당이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민주당의 위장 탈당 꼼수로 그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안건조정위가 소용없게 되자 국민의힘은 물리력을 동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의원 수십명이 법사위 회의장으로 몰려가 ‘권력비리 은폐시도’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헌법 파괴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이 민주당 소속 박광온 법사위원장석을 에워싸고 항의했다. 국회 상임위원장석 점거나 회의장 내 소란은 선진화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안이다.
검찰청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지난달 27일에도 선진화법 무력화 논란이 불거졌다. 국민의힘이 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한 본회의 필리버스터를 예고하자 민주당이 ‘회기 쪼개기’로 맞대응했는데, 민주당의 조치가 선진화법을 통해 도입된 필리버스터의 취지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회기 쪼개기는 다수당이 국회의장과 합의해 통상 30일인 임시국회 회기를 하루로 단축하는 방식을 말한다. 회기가 끝나면 필리버스터가 자동 종료된다고 규정한 선진화법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실제 민주당은 회기 쪼개기를 통해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하루 만에 종결시켰다.
검찰청법 개정안의 본회의 표결 처리만 앞두고 있던 지난달 30일에는 국민의힘이 다시 한번 육탄 저지에 나섰다. 다수 의원이 국회의장실로 몰려가 박병석 의장의 본회의 참석을 몸으로 막아선 것이다. 이에 박 의장은 국민의힘 의원들을 힘으로 뚫고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넘어져 구급차로 이송됐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욕설과 함께 “천하의 무도한 놈들”이라고 소리쳤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본회의가 개의되자 발언대에 올라 회기 쪼개기에 협조한 박 의장을 향해 “앙증맞은 몸”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의장을 포함해 국회의원의 회의장 출석을 막거나, 회의 중 타인을 모욕하는 행위는 모두 선진화법에 어긋난다. 민주당은 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고소·고발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화법에 따르면 국회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력을 휘두르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국회가 물리적 충돌 사태로 얼룩지는 ‘동물국회’의 직전 사례는 2019년 4월의 패스트트랙 사태다. 당시 여야 4당(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선거제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려 하자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육탄 저지에 나서면서 극심한 충돌이 빚어졌다.
한국당 의원들이 주요 회의실 앞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여야 4당 의원들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면서 곳곳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국당 의원들이 4당의 법안 제출을 막기 위해 국회 의안과 사무실을 점거하자 의안과 직원들이 빠루(쇠지렛대)와 망치로 문을 뜯어내려고 한 일도 있었다. 나경원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 등 전현직 의원 23명은 선진화법 위반 혐의 등으로 서울 남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1심 판결도 나지 않는 등 진행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오주환 김승연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