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용서를 전파시키는 방법

입력 2022-05-07 04:05

나는 헌책방을 차리기 전 IT 회사에서 일했다. 컴퓨터를 좋아해서 대학 전공도 컴퓨터공학을 선택했다. 기계는 실수하는 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실수해서 혼이 나는 걸 싫어했던 나는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컴퓨터의 매력에 끌렸다. 그러나 기계를 포함해서 세상 모든 것은 신이 아닌 이상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수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실수했을 때 용서하고 화해하는 방법을 알기에 사람은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아름답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 깨달음을 준 것이 책이기에 나는 책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작은 가게에서 나는 책을 팔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지혜인 용서의 힘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용서를 전파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부터 먼저 누군가를 용서하면 된다.

몇 년 전 책방에 초등학생 한 명과 부모님이 손님으로 왔다. 둘은 서로 떨어져서 책을 구경했다. 그런데 어린이가 있는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나와 부모님은 거의 동시에, 혹시 아이가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그쪽으로 뛰어갔다. 어린이는 커다란 양장본 책을 들고 구경하다가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때 큰 소리가 난 것이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책은 망가졌다. 아이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망가진 책은 3만원짜리로, 그 정도면 헌책방에서는 비싼 책이다. 부모님은 책이 망가졌으니 변상하겠다고 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이는 실수한 것이다. 비싼 책이기는 하지만 변상까지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어린이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의 실수를 먼저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 마음가짐은 내가 보기에 3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실수로 그런 것이고 먼저 미안하다고 했으니까 용서해주겠다고 말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아이와 부모님은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조건은 간단하다. “오늘 용서해주는 대신 너도 언젠가 다른 사람이 실수했을 때 한번 용서해주렴. 두 명에게 한 번씩 용서하고 지금 아저씨가 했던 조건을 똑같이 말해주는 거야.” 아이는 웃으면서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부모님은 자기도 똑같이 두 사람을 용서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나는 오늘 두 사람에게 용서를 전했다. 그리고 이 둘이 언젠가 약속을 지킨다면 용서는 네 사람에게 이어진다. 넷에서 여덟로, 여덟은 열여섯으로…. 용서는 갈수록 많은 사람에게 전파된다.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은 또 다른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젠 실수를 두렵게 여기지 않는다. 고백하고 사과하면 용서와 화해의 마음이 전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책방에선 책을 팔아 돈을 벌지만 책이라는 물건을 파는 것만은 아니다. 책 안에 있는 아름다운 가치를 함께 나누는 곳이 진짜 책방이다. 그리고 이 나눔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