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파친코’ “장대한 서사와 섬세한 캐릭터 빛났다”

입력 2022-05-04 04:06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부산 영도에서 만난 젊은 선자(김민하·왼쪽)와 한수(이민호). 애플TV+ 제공

“노아야, 오래오래 산다는 건 훨씬 대단한 일이야.”

희망이 보이지 않던 일제 치하 조선에서 선자(김민하)를 데리고 일본 오사카로 온 목사 이삭(노상현)은 돌잔치 때 자신이 실타래를 잡았다는 사실을 불만스러워하는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고향을 떠난 한국인 이민자들의 생존기다.

지난달 29일 시즌1 마지막회를 공개한 8부작 ‘파친코’는 장대한 서사와 섬세한 캐릭터를 선보이며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한국인의 역사를 배경으로 했지만, 다양한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담으며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주인공 선자를 중심으로 자이니치(재일조선인)의 삶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면서 가족과 이민, 금지된 사랑 등 보편적인 주제를 풀어냈다.

각각의 시대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한 캐릭터들은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높였다. 드라마는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이방인의 삶을 선택한 선자, 사랑과 야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수(이민호), 억압의 시대에 딸을 지켜내고자 했던 강인한 어머니 양진(정인지), 굳건한 믿음으로 현실을 헤쳐 나가는 이삭 등 다채로운 인물의 복합적인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노년의 선자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천진한 소녀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성장하며 격동의 세월을 꿋꿋하고 다부지게 살아가는 젊은 선자 역의 김민하도 호평을 받았다.

시대상을 잘 담아낸 미장센도 눈길을 끌었다. ‘파친코’는 한국, 일본, 캐나다 로케이션을 통해 1915년 부산 영도부터 1989년 북적이는 뉴욕과 일본의 호황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애플TV+는 “제작진은 수십 년의 시대와 다양한 나라를 넘나드는 설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기 위해 철저한 고증을 원칙으로 했다”며 “한국과 일본 기와의 만듦새, 일본과 서양 양복 재질의 미묘한 차이까지 각 분야 전문가로부터 꼼꼼하게 자문받았다”고 밝혔다.

한국적인 판소리와 팝을 결합한 오프닝 음악도 화제가 됐다. 매회 오프닝에선 미국 록밴드 그래스 루츠의 히트곡 ‘렛츠 리브 포 투데이’에 맞춰 드라마 주인공들이 춤을 췄다. ‘범 내려온다’로 주목받은 밴드 이날치는 시즌1 마지막회의 오프닝에 참여했다. ‘아름다운 것들로 인생을 채워요’ ‘찬란하게 흘러가네’ 등 우리말 가사는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삶을 꽃피운 주인공들의 모습과 겹쳤다.

외신들도 주목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파친코’는 선자를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닌 이민자들의 끈기를 투영한 인물로 완성시킨다”며 “역사적, 예술적으로 중요한 흔치 않은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롤링스톤은 “‘파친코‘는 예술적이고 우아한 방식으로 주제를 다룬다. 원작 소설의 촘촘함과 영상물 특유의 장점이 완벽하게 결합된 가족 대서사시”라고 평했다.

드라마는 시즌1 마무리와 함께 시즌2 제작을 확정했다. 총괄 프로듀서 수 휴는 “끈끈한 생명력을 지닌 가족의 특별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며 “놀라운 배우들, 제작진과 계속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