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끝까지 내로남불

입력 2022-05-04 04:10

문재인 대통령은 기다렸던 것 같다. 검수완박 법안이 3일 국회를 온전히 통과하자 곧바로 국무회의를 열어 공포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통과가 늦어질까 봐 통상 오전 10시에 하던 국무회의를 오후 4시로 미루더니, 더불어민주당이 오전에 일사불란하게 통과시키자 다시 오후 2시로 앞당겼다. 그래서 ‘대통령의 시간’은 서너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는데, 숙고하기에 부족했을 것 같지는 않다. 거부권 행사는 애당초 선택지에 없었던 듯하다.

지난 몇 년간 국회를 통과한 법안 중 이렇게 깊이 있고 광범위한 토론이 이뤄진 것도 흔치 않다. 억울한 피고인을 대리하는 인권변호사, 힘없는 약자를 대변하는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까지 나서서 검수완박의 맹점과 폐해를 호소했지만, 대통령 귀에는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일반 국민과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입는다며 그들이 제기한 문제에 문 대통령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수사를 콕 집어 무력화한 중재안을 가리켜 “잘됐다”고 했을 뿐이었다.

문 대통령이 막판에 고민한 건 조금 다른 차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면을 하느냐, 검수완박을 하느냐. 최근 여권 지지층에서 사면 요구가 많았다. 이명박 김경수 이재용 등이 거론된 걸 보면 그들이 원한 사면 대상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였을 것이다. 이미 수감된 김경수의 특별사면과 미래의 수사를 저지할 방탄 입법. 임기 말에 둘 다 하기는 민망했을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과감히 미래지향적인 선택을 했다. 사면 대신 방탄을 하기로.

이것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괘념치 않는 것인지, 역사의 평가도 진영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최근에 했던 “백년대계”란 말은 안 하는 게 좋았을 뻔했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두고 “백년대계를 토론 없이 밀어붙인다”고 비판했는데, 정작 자신은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고작 한두 달 새 뒤엎는 검수완박에 기다렸다는 듯 서명했다. 퇴장하는 순간까지 내로남불이었다는 평가는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