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자.”
30대 구미정(가명)씨는 지난해 여름 코로나19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된 이후 우울증이 심해졌다. 2년 전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상담과 치료를 받으면서 호전됐었다. 그런데 실직 뒤 대인기피증까지 발현되면서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연스레 가족과의 대화도 끊겼다. 그는 결국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이 며칠 동안 설득한 끝에 구씨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진료실에서 의사와 처음 마주한 구씨 입에선 “난 뭘 해도 안 될 거예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등의 절망적인 말이 뱉어졌다. 그는 “낯선 이가 웃고 있으면 ‘날 비웃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우울증 환자가 겪는 흔한 감정으로, 인지 왜곡에서 비롯된 증상이었다. 해당 의사는 “처음 환자가 병원을 찾았을 때는 부정적인 감정에 완전히 매몰된 듯 보였다”고 회고했다.
의사는 ‘일기 쓰기’를 제안했다. 하루 동안 느꼈던 감정이나 타인에게 보였던 행동을 모두 적어 달라고 당부했다. 남편의 동의를 얻어 남편과의 대화를 녹음해 달라는 숙제도 냈다. 일기나 녹음은 자신을 객관화하기 위한 재료다. 우울증 등을 유발하는 잘못된 생각을 찾아 이를 바로잡는 인지 교정을 위해 필요했다.
구씨가 들고 간 녹취엔 “이렇게 더운 날 어떤 사달이 날 줄 알고 밖에 나가냐”는 언급이 있었다. 의사는 “더운 날 친구를 만나도 다툴 일보다는 그저 일상의 대화를 나눌 확률이 훨씬 높다”고 안심시켰다. 어느 날 일기에는 “살기 싫다”는 문장이 반복돼있었다. 이를 본 의사는 “어릴 때 30대 중반에는 뭘 하고 싶었나요”라고 물었고, 구씨는 어린 시절의 꿈을 얘기하며 차츰 속내를 털어놨다.
치료 시작 한 달 뒤에는 구씨에게 “힘들다고 느끼는 것을 종이에 적어보라”고 요청했다. 구씨는 A4 용지에 빼곡하게 부정적인 감정을 적어 내려갔다. ‘친구와 함께 밥을 먹기 싫다’ ‘전화를 받기 싫다’ ‘씻기 싫다’ 따위의 문장들이었다. 의사는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문제에 동그라미를 치도록 했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면서 인지 교정의 우선순위를 정한 것이다. 그다음 단계로는 ‘쓸모없는 생각 버리기’ 훈련이 진행됐다.
치료 후반부 무렵 구씨는 “남편에게 먼저 외식을 하자고 말했다”며 의사에게 자랑했다.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삶에 대한 의욕이 생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스스로 맛집을 찾아 예약도 했다고 했다. 그는 “이젠 남편과 해보고 싶은 게 생겼다. 코로나도 끝나가니 이젠 내가 힘을 낼 차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사람마다 다르듯 여기에서 회복하는 속도도 같지 않다. 마음의 ‘회복 탄력성’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때 일상에서 멀어졌던 구씨는 치료를 통해 조금씩 일상에 가까워졌다. 최근 마지막 인지행동치료를 끝내던 날 구씨는 의사와 작별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나다워진 것 같네요.”
구씨를 진료한 전문의는 2일 “코로나블루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감염병이 야기한 마음의 병도 주변의 도움과 의학적 조력으로 충분히 회복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