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한 감사’… 우리은행·금감원·회계법인 변명만

입력 2022-05-03 00:04 수정 2022-05-03 00:04
서울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들이 2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확보한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경찰은 2012년과 2015년, 2018년 총 3차례에 걸쳐 공금 614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우리은행 차장급 직원 A씨를 구속해 수사 중이다. A씨 동생도 공범 혐의로 함께 구속됐다. 뉴시스

우리은행의 600억원대 횡령 사고는 내외부 감시망이 모두 속절없이 뚫린 총체적 관리 실패의 결과라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은행은 첫 횡령 발생 10년 뒤에야 614억원이 빠져나간 사실을 파악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범죄를 예방하기는커녕 수차례 검사에서도 적발하지 못했다. 외부 회계법인도 회계감사를 형식적으로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횡령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은 우리은행에 있다. 6년간 세 차례 모두 614억5214만원을 한 은행 직원이 별도의 계좌로 빼가는 동안 은행 내부의 준법감시인, 내부감사 등으로 짜인 ‘3중 감시망’은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 특히 거액이 빠져나간 우리은행 계좌는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M&A) 관련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진 한국 정부가 이란에 지급해야 하는 배상금을 보관하던 공탁금 계좌였다.

내부 감시 시스템을 통해 공탁금 계좌에 대한 잔고 증명서만 제대로 확인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 당국 한 관계자는 2일 “피의자의 대담한 범행 수법과 횡령액, 자수 과정을 살펴보면 1금융권에서 1명이 주도한 사고라고 믿기 어려운 매우 이례적인 횡령 사고”라며 “우리은행이 내부 자료를 모두 투명하게 공개해야 사건의 전말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간부들은 경찰 수사와 금감원 검사 결과에 따라 상당한 책임을 질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마지막 횡령이 이뤄졌던 2018년 행장을 맡았던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어떤 재발 방지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원덕 우리은행장도 2017년 말부터 경영기획그룹 상무 등을 맡았기 때문에 내부통제 기준을 보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부통제 규율을 다른 회사보다 훨씬 강하게 적용하는 금융회사에서 거액의 횡령 사고가 어떻게 벌어졌는지 의문”이라며 “결국은 내부통제 기준을 강화하도록 해야 하는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중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금융사를 감시·감독하는 금감원도 횡령 범죄를 발견하거나 미리 막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금감원은 횡령 사건이 일어난 2012~2018년 우리은행을 11차례 검사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진행된 종합검사에서도 금감원은 회계관리 구멍을 적발하지 못했다. 금감원은 횡령 사고를 발견하지 못한 이유를 살펴보고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횡령 사고가 일어났던 때를 포함해 2004년부터 2018년 말까지 외부 회계감사를 맡았던 곳은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이었다. 딜로이트안진은 이 기간 모두 ‘적정’ 감사의견을 냈다. 금감원은 딜로이트안진이 감사조서를 변조했는지, 회계부실을 고의로 덮지는 않았는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직원 1명의 ‘일탈’을 부각하고, 금융 당국은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문제 삼고, 외부 회계법인은 ‘금감원도 못 잡은 횡령’이라며 물타기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