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줄장난에 스러진 공정의 회복

입력 2022-05-03 04:02 수정 2022-05-03 14:39

살다 살다 원정화장이란 말까지 들을 줄 몰랐다. 평생 줄 서는 시간을 합치면 1년은 넘고 2년도 걸린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팍팍한데 정부 정책이 강요하는 줄서기에 삶은 더 아등바등해졌다. 고의든 실수든 그들은 공급을 줄이거나 수요를 늘렸다. 공정도 허물었다. 분양아파트, 공적 마스크, 정규직, 코로나 중증 병상, 요소수, 안치실과 같이 끝이 없었다. 대선 사전투표일에 방치됐던 확진 격리자들의 긴 줄도 개탄스러웠다. 그중 오롯이 불가항력적이었던 줄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 얄궂게도 먼저 왔다고 꼭 앞줄에 서는 것도 아니다. 협상과 재량이 통할 때가 잦다. 임대차 3법으로 왕창 늘렸던 전월셋집 줄에서는 상태가 열악해도 알아서 수리하겠다는 임차인이 먼저 계약한다. 급히 올린 최저임금에 저숙련 근로자부터 외면당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반면 정해진 기준대로 그 순위가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 줄이 있다. 입시, 입찰, 선정, 구급 등 의외로 많다. 이때 사욕을 좇는 세도가들의 공권력 ‘새치기’가 파고든다. 시민들은 분노한다. ‘불공정’이라 규정한다. 이 줄에서만큼은 힘이나 야합과 결코 절연돼야 한다는 기본과 상식을 뒤엎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리처드 라슨은 ‘사회 불의와 줄서기 심리학’에서 대기시간 감축(효율성)도 중요하나 순서 엄수(공정성)에 시민들이 훨씬 더 민감하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도 보였다.

심지어 공권력은 멀쩡한 줄을 ‘바꿔치기’도 한다. 평창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선발을 고대하던 국가대표 선수들의 간절했던 줄 한 도막을 잘라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직접고용 발표도 취준생들의 치열한 경쟁 줄을 싹둑 자른 조치였다. 근간에 의료 취약지역의 문제가 커졌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근무 희망자를 늘리는 시스템 개선 노력이 먼저고 의대 정원 조정도 가능하다. 그런데 여러모로 생경한 공공의대라는 대체 끈자락으로 의료인 수요를 거의 통째 메꾸려던 정부에 국민은 적잖이 당황했다.

줄장난이 이어졌다. 대장동 개발 전 단계에서 설계된 줄 바꿔치기는 대담함의 끝판왕이었다. 토지수용권과 인허가권이 탐욕에 휘둘렸다. 작년 세무사 시험은 야비함의 극치였다. 경력 세무공무원은 면제받는 2차 시험 한 과목에서 4597명 비경력 응시생의 무려 82%를 과락시켰다. 국가자격증 취득이라는 엄정 경합의 줄로부터 다발로 잘려 나간 이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헌법소원과 행정심판까지 가야 했던 억울함이 고스란히 와닿는다. 이뿐이겠는가.

상당수는 그저 ‘줄로 벌어먹는 생계공동체’의 단면이다. 정권을 불문한다. 하지만 이런 지대추구행위가 계속 창궐하면 공멸한다. 그 이론의 창시자 고든 털럭의 ‘특권과 지대추구의 경제학’에는 교훈이 많다. 가령 성실히 땀내며 양탄자 장사하느니 톈진시 시장이 돼 치부하는 걸 내놓고 동경했던 19세기 중국의 모습을 그렸다. 이후 청나라의 참담한 몰락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듯 공권력 일탈이 그 사단이었건만 하필 공직자범죄의 수사를 증발시킬 수 있는 입법이 목하 대폭주 중이다.

불공정이 난무하면 경제도약은 헛것이 된다. 경작보다는 뺏기에 몰두하고 당하는 백성도 저항하느라 일손을 놔버린다. 그간 스러진 공정을 새 대통령이 실제 복원시키는지 지켜보자. 내내 공약해온 그의 키워드다. 아울러 공권력의 통제본능이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는 더욱 활개칠 것이다. 무시로 줄 세우려는 폐습을 부릅뜨고 경계하자. 거꾸로, 악성 줄장난에 어렵지만 꿋꿋이 맞서 온 공직자들에게 숙여 감사하자.

김일중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