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에너지에 ‘정치’는 없다

입력 2022-05-03 04:04

물의 분자식은 H2O다. 지구에서 가장 많은 수소를 저장하고 있는 게 물이다. 중학교 때 화학 선생님은 물에 전기에너지를 가하면 수소와 산소가 발생하는 전기분해(수전해)를 설명하다 물었다. “수소를 공기 중에서 태우면 어떻게 될까요.” 누가, 어떤 답을 했는지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이어진 말은 또렷하게 남았다. “수소가 산소를 만나 연소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걸 이용할 수 있다면 인류는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수소는 매력적 에너지원이다. 가장 가벼우면서 또한 가장 흔한 원소다. 수소를 태우면 물만 나오기에 환경오염 걱정도 없다. 물에서 다시 수소를 뽑을 수 있으니 ‘고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수소는 얻기 어렵고 비싸다. 지금까지 수소 생산은 석유화학 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생수소, 액화천연가스(LNG) 정제에서 얻는 추출수소에 주로 의존한다. 이걸로는 많은 수소를 얻기 힘들다. 대량으로 수소를 얻을 수 있는 수전해는 상당한 전기 에너지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청정 에너지원인 수소를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해야 하는 역설에 직면한다.

온실가스 배출만 따진다면, 원자력발전은 현재의 실용 에너지 가운데 가장 깨끗하다. 발전소를 짓는데 초기 비용이 많이 들지만 원료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고 에너지효율은 높다. 핵분열 동위원소인 우라늄235 1g이 핵분열을 일으키면 같은 무게의 석탄보다 300만배, 석유보다 220만배의 에너지를 생산한다. 100만㎾급 발전소를 1년간 운전하려면 석유는 150만t, 우라늄은 30t 필요하다. 우라늄은 지구 곳곳에 고르게 매장된 편이다. 에너지 원료를 둘러싼 전쟁이나 가격 급등의 가능성이 작은 편이다. 미국의 생화학자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SF소설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 거대한 우주를 가로지르는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제시했다.

그러나 원자력은 방사선, 방사성 폐기물이라는 치명적 단점을 안고 있다. 체르노빌, 후쿠시마처럼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날 일말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최근에는 안전성을 높인 소형모듈원전(SMR)이 하나의 해답으로 제시되고 있다. 다만 방사성 폐기물 문제는 답을 찾지 못하는 형편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분류하는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이 자연 상태의 우라늄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 10만년이 걸린다. 아직 우리는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방법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탈 많고, 말 많지만 에너지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하면서 전기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 생태계와 경제 활동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전기를 ‘안정적으로’ ‘싸게’ ‘친환경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데 국가 생존이 달렸다. 국제정치, 국제분쟁의 밑바닥에는 에너지 안보, 자원 확보라는 ‘원초적 욕망’이 자리한다. 잦은 오일쇼크, 자원(에너지) 전쟁을 겪으면서 각국은 원자력으로 눈을 돌렸다. 기후 위기에 봉착하면서 ‘깨끗한 에너지’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탄소중립, 온실가스 저감, 깨끗한 에너지 사용은 거대한 무역장벽으로 떠오른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면서 만든 철강, 자동차, 전자제품이 자국 시장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노골적으로 장벽을 쌓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에너지를 낡은 정치 문법으로 읽는다. 지난 5년간 ‘탈(脫)원전’과 ‘친(親)원전’ 중 어느 한쪽에 서야만 하는 압박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무작정 원전’ ‘오로지 원전’ 같은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다양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는 국가 에너지정책에 내 편, 네 편은 없다. 갈등이나 유발하는 정치가 끼어들 만큼 한가롭지 않다.

김찬희 산업부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