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암호화폐(가상화폐) 투자로 얻은 소득을 금융투자소득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주식 양도소득세 전면 폐지 공약도 신중히 검토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개인 투자자(개미)를 겨냥해 내건 공약이 후퇴하는 모습이어서 ‘당선되고 나니 등 돌린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1일 국회에 따르면 추 후보자는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수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인사청문 서면답변에서 “가상자산 거래에서 발생한 소득을 금융투자소득에 포함하는 방안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비과세 기준 금액을 주식 수준으로 상향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세 원칙과 국제적인 가상자산 과세 추세, 거래 투명성을 위한 제도 정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추 후보자의 이 같은 입장은 윤 당선인 공약과 거리감이 있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암호화폐 시장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투자 수익에 대해 연 5000만원까지 과세하지 않고, 과세 시점도 투자 환경이 개선된 이후로 하겠다고 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바뀐 법에 따라 내년부터 250만원을 초과하는 소득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다. 투자자들은 그동안 정부의 과세 방침이 주식시장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공제금액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암호화폐 투자소득을 금융투자소득으로 분류해 공제액을 높이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제시돼왔다.
추 후보자는 주식 투자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양도소득세 전면 도입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윤 당선인이 꾸준히 밝혀온 ‘전면 폐지’ 기조에서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현재 주식 양도세는 단일종목 보유액이 10억원 이상인 대주주 등에게만 부과되지만, 내년 1월부터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연 5000만원 넘는 수익을 얻으면 누구나 내야 한다.
추 후보자 입장도 일리는 있다. 주식투자는 기업에 자금을 수혈하지만, 투기성이 강하고 실체가 불분명한 암호화폐에 주식과 같은 공제액을 설정하기에는 뚜렷한 명분이 없다.
주식 양도소득세 폐지도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대원칙에 어긋난다. 펀드, 채권, 파생상품 등을 제외한 주식에만 예외적인 혜택을 주면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증권거래세율 인하에 따른 세수 부족분을 양도소득세 없이 어떻게 메꿀 것인지도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 당선인이 개인 투자자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만큼 투자자들은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윤 당선인은 약속했던 대로 금융투자소득세 전면폐지 등 공약을 이행할 것으로 믿는다”며 “위헌 요소가 있는 현행 가족합산 대주주양도소득세 과세 등도 반드시 폐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