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어, 낙도 없어… 청년과 노년 ‘슬픈 코로나’

입력 2022-05-02 00:03

“희망이 없어. 그동안 고마웠어.”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2020년 여름 20대 여성 김민아(가명)씨가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친구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곤 곧바로 119 구급대에 신고했다. 구급대원들이 잠겨있는 원룸의 문을 강제로 열었을 때 김씨는 이미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우울증 알약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넣은 뒤였다. 급히 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김씨는 위세척을 받고 생명을 건졌다.

배우 지망생인 김씨는 코로나19 이전까지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기 학원비를 마련했다. 드라마·영화에 종종 단역으로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가끔은 연극 무대에도 섰다. 우울증을 앓긴 했지만 꾸준한 치료로 증상이 꽤 호전된 상태였다.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던 그의 일상은 코로나19 파고 속에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공연과 드라마 촬영 일정이 줄줄이 취소됐다. 카페 손님이 뚝 끊기면서 아르바이트도 관둘 수밖에 없었다. 김씨의 우울증 치료를 담당해 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김씨가 ‘나는 꿈도 잃고 직장도 잃었다. 코로나 때문에 정말 억울하다’고 호소하던 모습이 기억난다”며 안타까워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영화·드라마 제작 현장도 서서히 일상을 찾아가는 모습이지만 김씨의 삶은 코로나 이전으로 온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아르바이트 자리와 연기학원을 다시 알아보고 있지만 심리적 상태는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게 치료를 담당한 전문의 의견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마음의 상흔은 김씨와 같은 20~30대 여성에게 더욱 쉽게 새겨진다. 백종우 경희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여성들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대면 서비스 업종, 또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며 “특히 젊은층이라면 노동시장에 신규 진입하거나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여 있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30 여성과 함께 노년층도 코로나19에 따른 ‘정신 건강 취약 계층’으로 꼽힌다. 타인과의 대면 접촉이 줄면서 홀로 사는 노인들의 정신 건강에도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경북 경주에서 홀로 사는 70대 중반의 박순자(가명)씨는 지난해 9월 자식들의 손에 이끌려 처음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된 이후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 받던 자녀들은 약 1년 만에 박씨를 마주했다. 노인정도 폐쇄돼 박씨는 하루 종일 집 안에서 TV만 봤다고 한다. 자녀들이 박씨에게 “뭘 봤느냐”고 물어도 자신이 본 프로그램을 기억하지 못한 채 멍하고 기력이 없었다. 자녀들은 치매를 의심했다. 진단 결과 치매가 아니라 우울증이 동반이 된 인지저하였다.

노인정신의학 분야 전문의인 강동우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고령층은 노인정이라든가 문화센터 같은 또래 그룹을 통해 가족 간 연계가 끊긴 것을 보완했는데 (코로나19로) 그마저도 끊겼었다”며 “고령층의 정서적 고립감이 늘면서 우울증 빈도도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고령층은 온라인 환경에 익숙지 않아 인터넷을 통한 사회적 연결조차 쉽지 않아 우울증에 더욱 취약하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강 교수는 “단조로운 실내 생활이 장기간 이어져 노년 우울로 이어질 수 있는데, 우울도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일상 회복 시기에 맞춰 고령층 정신건강을 살피고 생활 자극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