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군 법무관들, 이 중사 사망 후 “남친 돌싱 됐네” 2차 가해

입력 2022-05-02 04:02
군내 성폭력과 2차 가해에 시달리다 지난해 5월 극단적 선택을 한 이예람 중사의 영정 사진. 연합뉴스

성추행 피해로 극단적 선택에 이른 공군 이예람 중사의 사망 이후에도 군 내부에서 끊임없는 2차 가해가 이뤄졌던 정황이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로 확인됐다. 국민일보가 30일 입수한 인권위의 ‘군대 내 성폭력에 의한 생명권 침해 직권조사’ 결정문에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결정문에 따르면, 이 중사의 국선변호인을 맡았던 공군 A중위와 군법무관 동기 3명은 지난해 6월 1일 단체 카톡방에서 이 중사의 신상정보를 공유했다.

이 카톡방에서 “남친은 하루만에 돌싱됐네”, “혼인신고가 개트롤(‘허튼짓’의 의미)이네, (혼인신고)해서 엿 먹인 게 아닐까, 이해가 안 되네” 등의 메시지가 오갔다.

이들은 이 중사가 같은 해 5월 21일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마친 날 저녁, 관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 모욕적인 메시지를 나눈 것이다.

이 중사의 원 소속부대에서도 2차 가해가 이뤄졌던 정황이 밝혀졌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군검사 B중위는 같은 해 4월 16일 이 중사의 자살 시도를 인지하고, 부대 관계자 2명에게 “XX(욕설 단어) 강제추행” “피해자 자살 시도” “차에 탓던(‘탔던’의 오타로 기재) 상사 XX(욕설 단어)가 피해자 남편(‘혼인 신고 전의 남자 친구’ 지칭) 불러 합의 종용” 등 내용을 문자 메시지로 공유했다.

성추행 사건 수사 담당 군검사가, 이 중사가 심각한 불안정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이 중사를 둘러싼 상황을 주변에 전달하는 등 2차 가해를 한 것이다.

A중위의 단체 카톡방 대화 내용과 B중위의 문자 메시지 내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은의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다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변호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군법무관들이 이 중사를 모욕하는 대화를 나눴다”며 “피해자가 군 내부에서 어렵게 문제를 제기했을 당시 느꼈을 좌절감 등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8월 직권조사에 착수한 인권위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3월 31일 “국선변호인 및 그의 동료인 법무관들과 20전투비행단 군검사 부대 관계자들이 수사 중인 사항을 외부에 노출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있다”며 국방부에 추가 조사를 권고했다.

A중위는 지난해 10월 직무유기 등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기소됐지만, 지난 3월 군사법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군검사 B중위 역시 직무유기 등 혐의로 수사를 받았지만 국방부 검찰단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인권위 직권조사에서 2차 가해 정황이 추가로 확인된 만큼, 이들은 향후 꾸려질 이 중사 사망 사건 조사를 위한 특검에서 다시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중사의 부친은 “그동안 군에서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가 이뤄진 결과,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 등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며 “특검에선 관계자들의 2차 가해 정황 등을 샅샅이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우진 신용일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