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 한·일 간 제반 현안의 포괄적 해결 등 대일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했다. 당선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통화한 외국 정상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이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정책협의단을 파견한 것도 일본이다. 윤 당선인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뜻을 일본에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메시지에 일본은 기시다 총리가 직접 정책협의단을 만나 윤 당선인 친서를 전달받았고, 아베 신조 전 총리나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을 포함한 현직 각료 등과 예정됐던 모든 면담이 순조롭게 이어졌다. 이는 윤석열정부 출범과 함께 한·일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가 일본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의 국제적 상황이 한·일 양국의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북한 핵 미사일 개발은 공통의 위협이며 한·미·일이 연계해 대처해야 할 긴급한 과제다. 경제적 측면에서 반도체 등 전략물자의 생산 거점인 한국과 소재를 공급하는 일본의 상호 의존 관계는 복원돼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질서가 동요하는 현시점에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고려한다면 양국이 긴밀하게 협력해야만 한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다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윤 당선인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냉엄하고, 헤쳐가야 할 길은 험난하다.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우선 일본에는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이 한국에 있으며 한국이 국제적 룰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라는 프레임을 구축하려는 세력, 이를 토대로 일본이 한국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 이에 반론을 제기하며 한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중시하는 언론과 정치 세력은 그 힘이 약화되고 있다. 오히려 혐한을 선동하는 정치 세력과 이를 재생산하는 극우 성향 언론이 여론을 주도하는 상황이다. 이런 정치 지형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한국에는 고착화된 반일 감정이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를 긴장시키는 요인, 예를 들면 독도나 일본군 위안부, 역사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의 문제가 주기적으로 등장해 반일 감정을 재생산한다. 일본에 전후의 역사만을 보고 전전의 역사는 잊으려는 세력이 있다면, 한국에는 전후의 역사에는 관심이 없고 전전의 역사만을 보려는 여론이 존재한다. 상대국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음을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상대국에 대한 강경 여론을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설득한 정치 리더가 지금까지 양국에는 거의 전무했다.
이같이 험난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한·일 양국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고, 당면한 과제에 협력해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요청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를 위해선 정치 리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며, 새로운 대통령의 등장이 기회가 될 수 있음도 사실이다. 다만 조급함은 금물이다. 전후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를 윤석열정부가 출범함과 동시에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개별 현안을 하나 해결했다고 장밋빛 미래가 전개되는 것도 아니다. 일본 총리를 자주 만나 상호 신뢰를 구축하면서 반일과 혐한으로 고착화된 양국 언론과 국민을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설득하고, 5년이라는 임기 속에서 긴 호흡으로 한·일 관계를 계획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훗날 윤석열 기시다 시대부터 우호적 한·일 관계가 새롭게 출발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상훈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