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제작진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출연 논란에 대해 간접적으로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동시대를 사는 다양한 사람의 진심을 전해 온 힐링 콘텐츠와 유재석이라는 ‘친밀하고 공정하다고 믿었던 브랜드’가 손상됐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유퀴즈’는 27일 전파를 탄 151회 방송 후반부에 ‘폭풍 같았던 지난 몇 주를 보내고도 아무 일 아닌 듯, 아무렇지 않은 듯, 쳇바퀴에 그저 몸을 맡겨야만 하는 나의 제작일지’라는 제목으로 제작진의 입장을 전했다.
제작진은 “이 프로그램은 길바닥의 보석 같은 인생을 찾아다니며 한껏 자유롭게 방랑하던 프로였다. 보통 사람들이 써 내려가는 위대한 역사를 담을 수 있어서, 어느 소박한 집 마당에 가꿔 놓은 작은 꽃밭과도 같은 프로그램이라서, 날씨가 짓궂더라도 계절이 바뀌더라도 영혼을 다해 꽃 피워 왔다”고 밝혔다. 이어 “한 주 한 주 관성이 아닌 정성으로 일했다. 그렇기에 떳떳하게 외칠 수 있다. 우리의 꽃밭을 짓밟거나 함부로 꺾지 말아 달라고, 우리의 꽃밭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것이라고”하며 프로그램에 전념할 수 있게 해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하지만 그간의 논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사과가 없자 시청자 게시판엔 비난이 이어졌다. 일부는 “그저 입장문, 사과는 없다” “스스로 꽃밭을 다 망쳐버린 걸 왜 모르나” “피해자 코스프레(행세)” 등으로 비판했다.
‘유퀴즈’는 지난 20일 윤 당선인을 출연시켰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제작사인 CJ ENM이 과거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출연은 거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외압과 정치적 편향 논란이 불거졌다. 불똥은 진행자인 유재석에게도 튀었다. 유재석을 비난하는 악플이 쏟아지자 소속사 안테나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어떤 의도와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가’를 고민해 볼 계기라고 입을 모았다. 정치인이 홍보를 위해 예능에 출연하면 이런 문제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윤 당선인이 ‘유퀴즈’에 출연했을 때 사실상 수평적인 대화가 이뤄지진 않았던 것처럼, 지금까지 예능은 정치인을 검증하거나 어떤 쟁점을 제시하기보다 인간적이고 유쾌한 이미지로 선전하는 역할로밖에 활용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논란에 대해 ‘유재석이 대답하라’고 요구하는 건 워낙 영향력이 큰 인물인 데다 유재석이란 브랜드에 대한 배신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책임 있는 설명이 없어 상황이 더 악화하고 있다. 제일 책임이 큰 건 CJ, 그다음은 제작진”이라며 “유재석 역시 소속사를 통해 입장을 밝히는 게 논란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능 프로그램에 정치인이 출연할 수는 있지만 특정 성향에 편향돼서도, 외압을 행사해서도, 정치인이 예능을 이미지 세탁의 장으로만 활용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