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20)씨는 대학에 입학한 지난해 2월 외할아버지(당시 90세)가 코로나19로 사망한 후 불안 증세가 심해졌다. 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박씨에게 외할아버지의 존재는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발목 수술을 받은 직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격리병동으로 이송됐다. 격리 초기만 해도 “병원에서 신을 슬리퍼를 보내 달라” “편하게 입을 잠옷을 사 달라”고 가족들에게 주문할 정도로 정정했는데, 얼마 후 폐렴 증세가 나타나더니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격리병동 입원 전 외할아버지를 간호했던 친척들이 연달아 확진 판정을 받아 격리병동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장례도 박씨 어머니 혼자 치를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박씨의 불안 증세를 심화시켰다. 감염병 탓에 마지막 인사조차 제대로 못 했다는 사실이 박씨를 괴롭혔다. 결국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동네 청소년 상담 센터를 찾아갔다. 박씨는 1주일에 한두 차례 상담을 받았다. 이야기를 하고 나면 불안 증세가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
코로나19 유족들 중에는 시간이 흘렀어도 불안감과 허탈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건강했던 가족이 하루아침에 상태가 악화해 치료받을 겨를도 없이 숨을 거두는 모습을 근거리에서 지켜본 탓이다.
2020년 3월 대구에서 아버지(당시 62세)를 떠나보낸 이현수(42)씨는 2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씨는 “‘나도 아버지처럼 갑자기 코로나19에 걸려서 죽지 않을까’하는 공포감이 밀려온다”고 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로는 생업도 포기했다. 보험 영업 일을 했었지만 코로나19 감염 공포 때문에 더 이상 사람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코로나19로 열여덟 살 외조카를 잃은 김영진(40·가명)씨도 건강 염려증이 커졌다. 외조카는 생전 학생 레슬링 선수였다. 운동하던 건장한 조카마저 숨지자 코로나19는 더 공포스러운 존재가 됐다.
그는 직장에서 안색이 좋지 않거나 기침을 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면 바람을 등질 수 있는 방향으로 슬쩍 이동한다. 멀찍이 떨어져 서서 비말이 닿지 않을 정도까지 거리를 벌리기도 한다. 갑자기 거리를 두는 김씨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는 시선도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씨는 얼마 전 누나와 매형이 차례로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도 가슴을 졸였다. 김씨는 “격리 기간 매일같이 두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몸 상태를 확인했다”며 “남은 가족들이 우울증이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불안 부추기는 불신과 실망
유족들은 제때 심리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더 큰 절망을 겪기도 한다. 장례 절차가 제한돼 애도의 과정이 생략되면서 마음의 병이 커질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코로나19 유족들에게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심리 상담이 이뤄진다. 하지만 사망자 수가 폭증하면서 대상자가 크게 늘었고, 단체 문자를 보내 참가 의사가 있는 경우에 상담이 이뤄지다 보니 실제 적극적으로 응한 경우는 많지 않다.
아버지를 여읜 이씨 역시 “장례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자체에서 ‘심리 지원 서비스가 있으니 원하면 상담을 받으라’는 문자가 왔다”며 “개별적으로 연락이 온 것도 아니었고 형식적으로 느껴져 응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외조카가 사망한 김씨와 가족들 역시 심리지원이나 상담 서비스는 별도로 받지 않았다.
이씨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이씨 아버지는 신천지 유행이 시작된 대구에서 사망했다는 이유로 ‘신천지 신도가 아니냐’는 눈총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해명을 계속해야 했다”며 “코로나보다도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이 더 싫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마지막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유족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우려가 크다. 이금란(60)씨는 2021년 2월 아버지가 사망한 뒤 같은 해 12월 본인도 코로나19에 확진돼 격리병동에 입원하는 경험을 했다. 이씨는 “내가 입원을 해보니 아버지가 병동에서 혼자 너무 힘들고 외롭게 돌아가셨을 거란 생각에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버지가 격리병동에 입원했을 당시 외롭다며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 통화를 녹음해뒀는데, 돌아가신 이후에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책하고 있다.
사회적 애도 이뤄져야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충분한 ‘사회적 애도’가 허락돼야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한다. 일상 회복을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에게 제대로 된 위로와 상담을 해야 제대로 가족을 떠나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우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코로나19 유가족들은 ‘사람이 죽으면 슬픈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 2~3개월 이상 우울감이 지속되자 상담이나 치료를 받으면서야 가족 사망 사실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며 “장례 절차가 제한돼 충분한 애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울감이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19 초기 유족들을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종익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확진 사실조차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던 경험이 유족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심리 회복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