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중국 혐오’를 파헤치다

입력 2022-04-28 19:10
중국 베이징의 텐안먼 광장에서 새해 첫 날 국기 게양 행사가 열리고 있다. 중국인의 애국주의는 매우 강한 행동지향성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런 유별난 애국심은 종종 중국인 비하의 재료가 된다. 김희교 교수는 중국의 애국주의는 국가에 의해 강요된 게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감정으로 본다. 지금 중국은 “가난하고 누추했던 시절에서 막 벗어나 우리도 서구만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뉴시스

김희교(60) 광운대 중국학과 교수는 2018년 12월 23일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에 급하게 몸을 실었다. 그해 크리스마스에 베이징에서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당시 국내에선 중국 정부가 크리스마스 행사를 못하게 한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김 교수는 이 보도를 믿을 수 없었다. 베이징에 도착한 그는 무수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조명, 인파를 확인했다.

명백한 오보였다. 한국에서는 중국공산당이 크리스마스도 탄압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런 류의 오보가 생산된다. 김 교수는 지난 30여년간 자신이 경험하고 공부해 온 중국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며 “우리는 왜 중국을 이렇게 함부로 말하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사인’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26.4%로 일본(28.8%)이나 북한(28.6%)보다 낮았다. 반중감정은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없고, 젊은 세대에서도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온라인에선 중국 혐오가 놀이처럼 이뤄진다.

‘미개한 중국인, 나쁜 중국’이란 한국의 지배적 중국 인식은 김 교수가 이해하는 중국, 중국인과 크게 다르다. 그에 따르면 “중국민은 이 지구 어느 시민보다 자발적으로 근대성을 확보한 시민들”이며 “지금 중국은 문화대혁명 시기가 아니다.” “실제 중국은 자국의 국경조차도 미국의 힘 때문에 분열될 것을 염려하는 과민한 국민국가이자 신자유주의적 욕망을 갖기 시작한 중국민을 먹여 살려야 하는 국민국가일 뿐”이고 “미국의 총공세로부터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


김 교수는 ‘짱깨주의의 탄생’을 통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중국 혐오를 들여다 본다. 한국인들의 중국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왜곡됐는지 분석한다. ‘짱깨’는 한국인이 중국인을 비하하거나 혐오할 때 흔히 쓰는 말인데, 저자는 한국인의 중국 인식을 ‘짱깨주의’라고 명명한다.

책은 한국에서 짱깨주의를 형성한 주요 보도와 논란, 담론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문제점을 지적한다. 흔히 사용되는 ‘전랑외교’ ‘시진핑의 중국’ ‘중국의 보복’ 같은 표현들은 중국의 패권주의와 국가주의를 과장한다고 비판한다. ‘시진핑은 황제’ ‘중국은 독재국가’ ‘중국 기업은 스파이’ ‘중국은 패권을 추구한다’(중화패권주의) 등의 프레임도 현실을 왜곡한다고 주장한다.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김치공정’ ‘쇼트트랙 오심’ ‘중국발 미세먼지’ ‘제주도가 중국 땅이 된다’ ‘친중정권’ 등 논란도 검토한다.

저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당시 일어난 쇼트트랙 오심 논란에 대해 “쇼트트랙 심판장인 피터 워스의 오심이 나쁜 중국 때문이라고 비판하려면 그가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심판장을 맡았으며” “쇼트트랙은 어떤 종목보다 오심 논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도 알려야 했다고 지적한다. 김치공정에 대해선 “그렇게 주장하려면 몇몇 유튜브나 SNS를 엮어 중국이 김치공정을 한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개입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장 인권 탄압은 사실인가, 송환법 반대 홍콩의 반중 시위는 민주화운동이라고 볼 수 있는가 같은 민감한 질문도 던지며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홍콩이 처한 억압의 구조는 다층적이다. 민주와 반민주가 단순하게 나뉘지 않으며, 중국과 홍콩 간의 문제만도 아니다. 미국의 중국봉쇄 정책이 개입돼 있다. 그래서 “홍콩이 미국과 연합하여 독립하려 할 때 중국은 ‘일국양제’를 지키던 기존의 태도를 버리고 일국을 지키려는 물리적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문재인정부에 따라다녔던 친중정권이란 비판에 대해선 “문재인정부의 균형외교는 안보 보수주의자들의 친미주의와 신냉전 전략과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면서 “안보 보수주의자들이 문재인정부의 균형외교에 맞대응하여 들고나온 것이 친중정권 프레임이었다”고 분석했다.

책은 한국인의 중국 인식이 오해와 편견으로 점철돼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런 왜곡이 왜 일어난다는 걸까. 저자는 서구의 중국관이 외신을 타고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정보 유통 구조, 중국을 다르게 말하는 대항 담론의 부재 등을 이유로 꼽는다. 서구의 중국 보도에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위기감, 그리고 자유주의적 보편가치가 반영돼 있다. 저자는 동아시아 문제를 서구적 가치나 제도로만 진단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중국의 공산당 일당독재는 “중국민이 찾아낸 최적의 제도”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입헌군주제에서 다당제,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그들은 모든 것을 시도했지만 불행히도 이들 중 어느 것도 중국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혼란을 끝내는 데 효과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를 댄다.

한국의 혐중 감정에는 미국과 중국이 극단적인 충돌로 갈 것이며 미국이 중국을 이길 것이니 미국의 중국 봉쇄에 가담하는 것만이 한국의 살 길이라는 판단도 강하게 작용한다. 대중국 봉쇄를 밀어붙이는 미국의 편에 서서 중국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은 미국도, 중국도 우리에게 그들의 편에 서라고 강요할 수 없는 시대”이며 “우리가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하는 것이 필연이나 운명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그는 “중·미 경쟁으로 만들어진 아시아의 전략적 지형은 필리핀 대통령인 두테르테의 거친 중립외교 노선도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며 “우리도 ‘노’라고 말할 힘이 있고,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택할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부상을 서구처럼 위협으로만 느낄 게 아니라 다자주의 시대의 개막으로 보고 탈식민화와 평화체제를 위한 기회로 삼자는 주장도 이어진다. 그는 “중국이 성장하고 미국의 신식민주의체제가 흔들리고 아시아의 역량이 성장했고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도 패권을 장악하지 못하는 지금이 바로 우리에게 기회”라며 “미국의 권력을 제어하는 데 중국의 꿈을 활용하고, 중국이 지역패권을 차지할 가능성을 제거하는 데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가치를 이용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100년 동안 꿈꿔 왔던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이룰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뜨겁고 견고한 반중감정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점에서 논쟁적이고 과감한 저술이다. 저자는 국내의 진보적 언론과 학자들조차 신냉전적 중국 담론에 포섭돼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의 실천적 중국학은 지금 길을 잃었다. 그 사이 한국의 대중들은 신냉전적 기획의 포로가 되었다.” 저자는 책에서 고 리영희 교수를 몇 차례 언급하는데, 냉전시대 중국 인식에 균열을 낸 리 교수의 작업이 이 책을 쓰는 데 영향을 줬음을 짐작케 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