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검찰개혁에 이르지 못한 ‘검수완박’

입력 2022-04-29 04:07 수정 2022-04-29 04:07

윤석열정부 탄생 서사에서 수사는 출발점이다. 시련과 부활을 동시에 상징하는 필수 요소도 된다. 대통령 당선인은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과정에서 밀려났지만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로 표상되는 강골 이미지를 얻었다. 정권이 바뀐 뒤엔 자신을 밀어낸 수사가 되레 그를 밀어 올렸다. 특검 수사팀장으로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고,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을 구속 기소했다. 다섯 기수를 건너뛰고 오른 검찰총장 재직 시엔 법무부 장관 등에 대한 수사 여파로 검찰을 떠나야 했지만, 1년 뒤 대통령 당선인이란 신분을 얻었다.

시련이 정권에 의한 것이었다면 부활은 여론에 힘입었다. 수사가 정권을 겨눌 때 정권은 반발했으나 여론은 정반대였다. 물론 수사에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 입문 1년도 안 된 이가 생애 첫 공직선거인 대선에서 승리하는 서사를 완성시킨 주된 동력은 아무래도 수사를 통해 쌓은 호감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정권에 대한 반감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당선인 개인과 가족에 대한 의구심을 넘어서는 발판이 됐다.

그런 점에서 당선인이 여전히 검찰과 겹쳐 보인다. ‘헌법주의자’라는 본인 해명에도 ‘검찰주의자’라는 인상이 강하다. 후보 시절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폐지 등을 공약으로 삼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독립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민주적 통제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검찰 시절 최측근으로 향후 행보에 이목이 쏠렸던 이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도 앉혔다. 대선 직후 검찰 움직임도 정권 교체를 실감나게 했다. 3년간 소식이 들리지 않던 현 정권 ‘블랙리스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 재개는 새 정권 출범 후 전 정권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강행은 이 같은 분위기에서 나왔다. 일견 새 정권의 검찰권 강화에 대한 여권의 우려가 전혀 근거 없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검찰 개혁 논의도 필요할 경우 계속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개혁 방식은 국민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실제론 당리당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를 용인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경찰 개혁 같은 다른 논의를 중단한 채 검찰 힘빼기에만 전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도 바람직하지 않다. 형사사법체계의 공백을 허용하는 듯한 태도 역시 무책임하다. 현 정권의 선거 개입 사건과 관련해 재판을 받는 여당 의원은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검찰의 6대 범죄 수사는 불요불급하지 않고, 수사권이 증발하면 국가 수사 총량이 그만큼 준다고 설명했다.

여당이 이제껏 추진한 검찰 개혁 명분도 퇴색시킬 공산이 크다. 정권 초기 검찰 개혁보다 검찰 수사를 택한 여당이 밀린 숙제하듯 허둥대는 모습은 개혁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를 쓴 김인회 감사위원의 1년 전 인터뷰 내용은 지금 상황에서 곱씹을 만하다. 그는 지난해 4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상대적으로 개혁이 균형 있게 이뤄지지 못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검찰 개혁을 새롭게 하려 한다면 새로운 합의와 대국민 약속이라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채 검찰 개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리더십을 갖기 어렵다. (검찰 개혁) 시즌2보다 지금까지 진행된 개혁의 성과를 일단 평가하고 해야 할 일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현장이 변화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고 새 개혁을 하겠다면 현장은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변화 과정에서 문제가 나타나면 개혁을 더 해보자고 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성급하고 무리하다.”

김현길 사회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