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윤 당선인, 대북 특사 조기에 보내야

입력 2022-04-29 04:05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외교 우선순위가 미국과의 동맹 강화, 일본과의 관계 회복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양국에는 이미 대표단도 다녀왔다. 응당 그래야 한다. 그게 우리 외교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그런 미·일과의 공조가 강경 보수 진영에서 요구하는 대북 압박 강화나 제재 일변도의 대북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 아닐까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당선인은 대북 선제 타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도 했다. 요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대북 강경 발언이 부쩍 잦아졌다. 북한과의 ‘대화’보다 ‘대결’에 방점을 찍은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미·일과의 공조 강화가 때때로 남북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지렛대가 되긴 하지만 그건 남한 통치자가 대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의 얘기다. 통치자가 자극적인 발언을 일삼으면서 북측 고립을 위한 공조에만 매달린다면 지렛대는커녕 관계 파탄을 재촉할 뿐이다.

한국 대통령에게 미·일과의 공조 못지않게 중요한 게 북한과의 관계를 좋게 가져가는 일이다. 헌법 69조가 대통령 취임 때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노력하라’고 선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끝은 안 좋았지만 역대 대통령 중 이 헌법적 가치를 가장 잘 구현하려고 노력한 이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폭파 등 몇몇 오점이 있지만 그래도 지난 역사에서 북한과 그토록 손에 잡힐 것 같은 평화에 다가간 적이 없었다. 판문점과 평양에서의 세 차례 정상회담, 15만 평양 시민을 상대로 한 능라도 5·1경기장 연설, 두 정상의 백두산 등반 등 이전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백두산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판문점과 평양에서 만나고, 또 여기 백두산에서 이렇게 같이 있다는 게 감격스럽다”고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이나 능라도 연설 장면 등이 통일전략전술이거나 ‘거대한 연극’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도출된 선언과 합의는 지금까지도 한반도 긴장 완화에 실질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고, 어쨌거나 우린 4년여 평화의 시간을 누렸다.

얼마 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교환한 친서에서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던 양 정상의 솔직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김 위원장이 “아쉬운 점이 많지만 이제껏 기울여온 노력을 바탕으로 남북이 정성을 쏟으면 얼마든지 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게 변함없는 생각”이라고 밝힌 대목에 주목한다. 이는 문 대통령보다도 윤 당선인 들으라고 언급한 내용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친서 내용이 긍정적이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ICBM 도발에 나서고, 핵을 선제적으로 쓸 수도 있다고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관계 개선에도 상당히 목말라 하는 것 같다. 이럴 때 당선인이 미·일과의 공조를 위한 노력만큼이나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지금은 아무래도 북·미 관계가 좋아지기보다는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가 그나마 더 나은 상황이다. 북한의 최근 태도에 비춰보면 비핵화 목표는 더 멀어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남북 관계까지 냉각된 채로 방치해둘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려면 윤 당선인이 김 위원장한테 먼저 친서도 보내고 특사 파견도 타진해볼 필요가 있다. 2018년 2월에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특사로 방남하고, 채 한 달도 안 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특사로 방북한 걸 계기로 순식간에 남북 및 북·미 관계에 훈풍이 불었던 경험을 되살려야 한다. 오히려 대북 강경파일 것 같은 윤 당선인이 예상을 깨고 먼저 손을 내민다면 북측이 더 반색할 수도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일은 문 대통령의 전매특허가 아닐 테다. 윤 당선인이 더 잘하지 말란 법이 없다. 북한 지도자의 손을 미국의 버락 오바마가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가 먼저 잡으리라고 상상이나 했는가. 남한의 보수 정권이 북한과 척지는 대신 진보 정권보다 관계 개선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그게 파격이고, 진짜 가보지 않은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차기 정부가 경제 발전과 성장에 진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는데, 한반도 평화 없이 이뤄지긴 어렵다. 윤 당선인이 발상을 전환해 한반도 평화 농사에서 일 한번 크게 내기 바란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