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맡긴 돈으로 영업하는 은행은 철저하고 투명한 자금 관리가 생명이다. 27일 적발된 600억원대의 우리은행 직원 횡령 사건은 이런 상식적인 믿음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28일 금융권과 경찰 등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전날 내부 감사를 통해 기업 구조조정 관리 업무를 맡은 직원의 횡령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해당 직원은 기업개선부에서 일하면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세 차례 614억여 원을 개인 계좌로 인출한 사실이 파악됐다. 횡령금은 우리은행이 주관한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이 무산되면서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으로부터 몰수한 계약금이 대부분으로 추정된다.
오스템임플란트의 2000억원대를 비롯해 최근 강동구청(115억원), 계양전기(246억원) 등의 거액 횡령 사건이 잇따르는 것은 우리 사회가 물질만능주의 임계점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은행 사건은 천문학적인 고객 돈을 취급하는 은행의 관리 소홀이 한탕주의 유혹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그동안 은행 금전사고 규모는 단일 건이나 합계로나 많아야 수십억원 정도인 데다 주로 일선 지점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지주 회장, 은행장과 한 지붕 아래 근무하는 본점 직원이 버젓이 수백억원을 가로채 왔음에도 10년 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로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다. 통상적으로 상급자가 도장을, 하급자가 통장을 관리하는 ‘크로스 체크’ 방식과 달리 우리은행은 해당 직원에게 모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관리의 기본기조차 갖추지 않은 셈이다. 우리은행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처음부터 철저히 점검하고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을 보여주지 않을 경우 고객들이 등을 돌릴 지도 모른다.
금융감독원은 2년여 전 터진 해외금리 파생결합증권(DLF) 손실사태를 계기로 중징계와 함께 은행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강화해왔다고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는 듯하다. 금감원은 그간 건전성 위주로 종합검사를 하다 보니 횡령 사건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구차한 변명 대신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재발을 막기 위한 근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사설] 금융신뢰 무너뜨린 우리은행 600억원대 횡령사건
입력 2022-04-29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