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1964년 민주당 재선 의원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했다. 자유민주당 김준연 의원 구속동의안이 상정되자, DJ가 나서 5시간19분 동안 의사진행 발언을 했다. 구속동의안은 처리되지 못한 채 다음 회기로 넘어갔다. 필리버스터가 성공한 최초이자 마지막 사례였다. 필리버스터는 의회에서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소수파가 진행하는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다.
해적이나 약탈자를 뜻하는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로’(filibustero)에서 나왔다. 미국과 영국에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의원들에게 필리버스터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일반화됐다. 우리나라 국회법에서는 무제한 토론 방식만 필리버스터로 허용한다. 자리를 비우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성인용 기저귀를 준비하는 의원들도 꽤 있다.
필리버스터는 제헌의회 때 도입됐다가 1973년 폐기됐고 2012년 국회선진화법으로 부활했다. 2016년 테러방지법, 2019년 선거법·공수처법, 2020년 국정원법·남북교류협력법 처리 당시 필리버스터가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 38명은 테러방지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9일 동안 필리버스터를 했다. 192시간27분으로 전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로 기록됐다. 개인 최고 기록은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이 보유하고 있다. 윤 전 의원은 2020년 국정원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12시간47분 동안 연설을 했다. 주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었다. 국민의힘은 ‘철의 여인’이라고 추켜세웠지만, 민주당은 ‘책 읽어주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했다. 전 세계 최고 기록은 미국 스트롬 서몬드 상원의원의 24시간18분이다.
국민의힘이 27일 검수완박 검찰청법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했다. 국민의힘 의원 2명, 민주당 의원 2명이 나섰다. 필리버스터는 민주당의 회기 쪼개기 전술에 밀려 6시간48분 만에 막을 내렸다. 필리버스터가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일종의 정치적 항의 표시다.
남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