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인한 거리두기 조치에 이어 실외 마스크 의무도 해제될 모양이다. 바야흐로 2년여의 기나긴 코로나 터널이 끝나는 셈이다. 터널을 지날 때 터널 끝에 이르면 갑자기 빛이 쏟아져 들어와 순간 당황하게 된다. 코로나 터널도 그렇다. 역설적으로 말해 우리가 이제 코로나와 더불어 사는 삶(위드 코로나)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던 차였는데, 또 갑자기 코로나 이후의 삶(포스트 코로나)을 맞이해야 하니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코로나 이후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나, 특히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가 회자된다. 필자도 묘안이 없어 코로나 이후 시대 맞이에 대해 정답을 제시할 순 없지만 한 가지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서둘러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대안 마련의 바탕이 되는 태도부터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태도가 대안의 기본 방향을 정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시대를 맞이하는 태도로는 과거 지향적인 회귀, 현재 지향적인 개선, 미래 지향적인 혁신 등을 들 수 있다.
첫째, 과거 지향적인 회귀는 코로나 시대를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시기로 보고, 신속하게 코로나 이전 시대로 돌아가려는 태도를 말한다. 마치 코로나 시대가 없었던 것처럼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를 바로 연결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코로나 시대만 제거하면 정상화된다는 식으로 모든 책임을 코로나에 전가한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 시대가 황금기였나?
적어도 교회에 있어 코로나 이전 시대는 황금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코로나 이전 시대는 거시적으로 볼 때 교회에 매우 불리한 시기였고, 전례 없이 급속한 교회 쇠퇴 현상이 벌어졌던 시기였다. 후기근대주의의 대표적 종교 현상인 ‘종교가 아닌 영성’(Not religious, but spiritual)이 한국교회에 적용돼 기성교회가 안팎으로 곤경에 처했다. 외적으로는 반기독교 현상인 ‘안티 기독교’가 대두됐고, 내적으로는 탈기성교회 현상인 ‘가나안 교인’이 대세를 이뤘다. 설상가상으로 인구 절벽에 직면했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들이 코로나 탓은 아니다.
둘째, 현재 지향적인 개선은 코로나 시대를 중시하면서도 그 시대에 발생한 문제만 해결하면 재정상화되리라는 태도다. 즉 코로나 경험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만 보고 그것이 삶에 미친 변화를 적극 고려하지 않는 일종의 미봉책적 태도다. 이런 의미에서 개선은 회귀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코로나 시대를 실용적 관점에서만 접근하기 때문이다.
셋째, 미래 지향적인 혁신은 코로나 시대를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 시대로 보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교회를 준비하는 태도다. 이미 교인들이 변했다. 따라서 이제 중요한 과제는 이런 변화를 적극 수용해 미래의 교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교회는 거시적으로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벌어진 후기근대주의의 변화와 미시적으로 최근 발생한 코로나 사태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새로운 교회의 본질과 사역을 준비해야 한다.
시급한 사안 두 가지를 들어보자. 먼저 교회 민주화이다. 기독교의 대부분 조직은 지도층이 고령화됐을 때 쇠퇴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초고령 조직이 됐다. 만일 지도 구조의 탈고령화가 당장 이뤄지기 어렵다면 회중의 다양한 집단(평신도, 여성, 청년, 장애인 등)이 대표성을 가지고 참여하게 해야 한다. 또한 교회의 탈모더니즘화이다. 이제 전 회중을 균일 집단으로 보고 획일적 정책을 시행하는 모델 대신 회중 각자의 독특성과 다양성을 고려해 반영한 자기주도적, 맞춤형 모델이 제시돼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 회중은 홀로 예배, 홀로 신앙생활을 경험했다. 이것을 수용하는 혁신적인 교회 공동체성이 요청된다.
안교성(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