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함께 읽는 한국 시인, 엄마의 죽음을 적다

입력 2022-04-28 17:52 수정 2022-04-28 21:19
김혜순 시인이 28일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 사옥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새로 출간된 자신의 열네 번째 시집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문화과지성사 제공

지난 10년간 외국에 가장 많이 소개된 한국 시인, 세계의 독자들이 함께 읽는 한국 시인, 김혜순(67)의 열네 번째 시집이 나왔다.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가 돌지?’(문학과지성사)라는 제목의 새 시집은 두툼하다. 1부는 시인이 엄마의 투병과 죽음을 지켜보며 쓴 시들이다. 2부는 코로나19라는 인류의 재난을 함께 통과하며 기록한 시들이고, 3부는 죽음과 작별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김혜순은 28일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 사옥에서 열린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수록된 시들은 5편을 제외하면 모두 2019년에 써놓은 것들”이라며 “시집을 쓸 때 엄마의 죽음이라는 저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비탄의 연대랄까, 불행이라는 것의 전체적인 번짐이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기도하는 것보다 비탄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고”라고 말했다.

시인은 2019년 엄마와 사별했다. 그때까지 엄마를 모시고 호스피스를 전전했다고 한다. 1부에 실린 36편의 시들은 아픈 엄마를 돌보고 장례를 치르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비는 시간에 썼다. 그는 “앰뷸런스 타는 게 저의 일과였다”면서 “엄마가 돌아가시고 세상을 보니까 모든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들어 있는 슬픔의 무게가 전달돼 왔다”고 했다. 또 “저의 엄마는 저의 과거형인데 돌아가심으로써 저의 미래가 됐다”며 “나에게 삶을 준 줄 알았는데 죽음도 주었구나, 그걸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김혜순은 엄마와 작별하는 과정에서 병과 죽음의 자리를 직접 경험하며 뜨거운 이미지를 생성해낸다. 엄마는 “펄펄 끓는 희디흰 고통 속에” 있다. 그는 “엄마는 알았을까. 결국 이렇게 된다는 걸” 묻고, “내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면/ 손가락을 비집고 삐져나오는/ 또 하나의 얼굴”을 만진다. 그리고 “지구를 가득 뒤덮은 사람들이 각자의 엄마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미지근한 입에서’라는 시에서는 “아빠가 죽자 엄마는 새한다” “엄마는 다리가 부러진 길고양이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물한다” “마지막으로 엄마는 얇은 ‘얇’한다” 등 동사의 자리에 명사를 사용하는 언어 실험을 통해 흥미로움을 고조시켜 나가는 한편 삶의 마지막으로 가는 과정을 아프게 보여준다.

‘거울이 없으면 감옥이 아니지’라는 시는 꿈에서 만나는 엄마의 이미지를 전해준다. 엄마는 “조용해진 건가 했더니 무정한 모습” “어딘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 “이제 다른 집으로 시집간 것 같은 모습” “내 앞에 있어도 3인칭이 되어버린 자태” “망원경을 쓰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김혜순은 평소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엄마에 대한 시를 쓰는 건 너무 어렵다” “엄마는 너무 가까워서 문장 밖에 있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엄마를 시 속으로 불러들이는 작업을 보여준다. 그는 “엄마에 관해, 엄마에 대해 쓴 시들이 아니다”라며 “무엇에 대해 쓴다는 게 아니라 함께 쓴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제가 시를 생성해 간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엄마를 보낸 후 시인은 앓았다. 응급실에 세 번이나 갔다고 한다. 김혜순은 “엄마를 잃는 고통은 산산이 부서지는 어떤 거더라. 엄마와 제가 만든 시간은 다 어디로 가 있을까. 그곳으로 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곳이 사막이다. 3부에 실린 시들은 사막과 모래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김혜순은 “우리의 시간과 나날이 다 부서져 파편화된 그곳을 저는 사막이라 불렀다. 그곳으로 우리 둘을 데려갔다. 그곳에서 시적인 생성을 해보려 했다”고 말했다.

김혜순의 시집은 외국에서 활발히 번역되고 있다. 이달 초 덴마크에서 번역 시집이 나온 데 이어 전작 ‘날개 환상통’(2019년)도 내년에 번역돼 나온다. 김혜순은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을, 지난해엔 스웨덴 시카다상을 받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