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피아니스트의 글쓰기

입력 2022-04-29 04:02

피아니스트 손열음 덕분에 니콜라이 카푸스틴 작곡가를 알게 됐다. 손열음의 연주를 통해 감상한 그의 음악은 화려하고 섬세했다. 우크라이나 사람으로 러시아에 거주하며 음악 활동을 했던 카푸스틴. 그의 1주기를 추모하며 작년 9월 열린 연주회에서는 다섯 번의 앙코르가 있었다. 객석에는 감동의 탄식이 이어졌다. 연주회에서 귀가한 뒤 손열음이 쓴 카푸스틴에 대한 글을 읽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콩쿠르 책자에 내 연주 곡목들만 모두 잘못 인쇄돼 있었다. 덕분에 관객들은 콩쿠르가 열리는 모스크바 콘서바토리의 볼쇼이 대극장에 와야만 내가 무슨 곡을 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카푸스틴의 ‘변주곡 OP.41’을 시작했을 때 장내가 술렁였다. 연주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모르는 곡을 내가 연주했기 때문이다. 이 곡은 차이콥스키 콩쿠르상에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재즈풍 곡이었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나고 많은 관객이 무대 뒤로 찾아와 곡을 물었다.” 놀랍고 신기한 이야기였다. 클래식 마니아들이 몰려든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열리는 볼쇼이 대극장의 풍경이 그려졌다.

세계 국제음악콩쿠르 연합체인 WFIMC가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회원에서 제명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들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유였다. 64년 역사를 지닌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러시아가 자금을 지원하고 홍보한다. WFIMC가 정치적 이유로 회원 콩쿠르를 퇴출시킨 건 1957년 결성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손열음이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하던 때가 떠오른다. 이 기록적인 수상으로 한국 음악 교육의 위상이 달라지기도 했다. 당시 그가 연재하던 글들은 인기가 많았다. 호기심이 많고 생각이 깊은 피아니스트의 음악과 세상에 대한 표현은 매력적으로 각인됐다. 손열음은 자신의 음반 삽지에도 직접 글을 쓰곤 했다. 이런 글쓰기가 연주자의 의도와 작품 해석을 도왔고 음악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했다. 손열음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그의 연주를 이만큼 좋아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내게는 음악을 잘 듣는 귀 훈련이 안 돼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글로써 대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열음의 글에 실린 자기 성찰과 고백도 진솔하다. 피아니스트는 연습할 때도 연주할 때도 언제나 홀로다. 가족도 친구도 전화기도 악보도 곁에 없는 큰 무대에서 무조건 멈추지 않고 계속 연주해야 하는 ‘잔인한 사실’을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을 짐작하게 하는 문체로 말한다. 인생이라는 무대에 던져진 인간은 누구나 혼자다. 그러니 어쩔 수 없겠지, 라고. 누군가 음악을 왜 하냐고 묻는다면, 내 음악과 내 인생이 대신 답해주기를 바란다는 겸손한 태도도 실렸다.

해외 유학을 거치지 않고도 세계적 콩쿠르에서 수상한 한국인, 다독가이며 글을 잘 쓰는 교양인, 평창대관령음악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무대를 만드는 연출자 손열음에게는 팬이 많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그의 연주는 위로와 힘이 돼주었다. 어수선하고 공포스러운 역병의 날들 속에서 그가 선보인 음반과 독주회는 오래된 세월을 견뎌온 음악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일깨웠다. 새롭게 연주되는 곡은 그 연주가 처음 발표된 몇 백년 전, 몇 십년 전의 공기를 느끼게 해줬다.

그가 쓴 글은 기록으로서 의미와 소통의 효용이 살아 있다. 손열음이 사랑하는 카푸스틴의 나라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그가 수상했던 차이콥스키 콩쿠르도 명예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전쟁이 시작될 무렵, 그가 연주회장에 우크라이나 국기 색상인 노랑 드레스와 파랑 드레스를 번갈아 입고 나온 마음엔 그런 간절함이 배어 있다.

손열음의 5월 연주회 티켓을 구하고 난 이후 나는 기대감에 들떴다.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시간은 분명히 고양감이 차오를 테니. 그리고 팸플릿에 실린 그의 짧고 귀한 글을 읽을 수 있을 거니까.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