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버지는 꽤 바쁜 일상을 보낸다고 했다. 새벽부터 축사에 가서 소를 돌보고, 낮에는 택시를 운전하고, 밤에는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도시에서 수업을 듣는다. 65세가 넘어 학생이 된 아버지는 여러 일을 하다 보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없는 것을 퍽 아쉬워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매번 수업에 빠지지 않고, 늦은 밤 귀가할 아버지를 떠올리니 성실한 열의가 느껴졌다.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진학해 수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가장 심하게 반대했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대학에 가고 싶다” 하니 웃음이 나오면서도 응원하고 싶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공부를 좋아하는 마음은 아버지나 나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하면서 공부하는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그래도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요즘 공부하는 내용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 입에서 “인권”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지 않는가. 아버지는 최근에 사회과목에서 인권기본법을 배웠고, 그 후로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사회권” “참정권” “평등권”을 내게 들려주며, 뉴스나 책에서 이런 단어가 나오면 더 유심히 보게 된다고 했다. 이런 아버지에게 응답이라도 하듯, 나는 처음으로 내가 하는 공부 또한 인권의 가치에 기대고 있으며 다른 사람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대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유쾌했다. 늘 독백 같던 아버지의 말에는 이제 타인의 자리와 생각이 묻어났다. 새로운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곱씹어 나에게 번역해주려는 태도도 멋있었다. 소박하지만 삶의 관록이 묻어난 말들, 뒤늦게 익혀서 더 소중하고 귀한 삶의 언어들이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나의 삶과 더불어 타인의 삶도 함께 풍요로워지는 것, 공부에 즐거움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천주희 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