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1월 경성일일신문사는 ‘핑퐁경기대회’를 개최했다. 한국 탁구계는 이 대회를 한국 탁구의 시작으로 본다. 파리올림픽이 열리는 2024년은 한국 탁구 100주년을 맞는 해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탁구가 처음 도입된 이래 한국은 유남규 김택수 안재형 현정화 유승민 주세혁 오상은 등 걸출한 스타들을 배출했지만, 2022년 현재 침체기를 겪고 있다. 코로나19로 지난해 개최된 2020 도쿄올림픽에서 ‘신성’ 신유빈이 깜짝 등장해 이목을 끌었지만, 대표팀은 노메달에 그쳤다. 2008년 베이징 대회부터 4개 대회 연속 개인전 노메달이고, 단체전도 2012년 유승민·주세혁·오상은 황금 트리오의 은메달이 마지막이다.
여전히 ‘탁구’ 하면 유남규 현정화 유승민 등 레전드만 언급되면서 탁구계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대한탁구협회는 지난해부터 ‘3개년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100주년을 앞둔 한국 탁구는 ‘제2의 부흥’을 일으킬 수 있을까.
첫 프로리그 출범… 반응은?
지난 1월 28일 2022 두나무 한국프로탁구리그(KTTL)가 출범됐다. 프로리그는 한국 탁구계의 숙원이었다. 중국 독일 일본 등이 프로리그를 바탕으로 세계 탁구를 주도해왔지만 한국은 과거의 명성을 이어가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차례 프로화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다 지난해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가 타이틀 스폰서를 맡아 우선 2년간 치러진다.
1부 격인 코리아리그(기업팀)와 2부 격인 내셔널리그로 나뉘며 코리아리그는 남녀 각 7개팀과 5개팀, 내셔널리그는 각 6개팀과 9개팀이 나섰다. 경기도 수원 경기대 캠퍼스 내에 탁구전용경기장 ‘스튜디오T’도 마련했고, 유튜브 등으로 생중계도 한다.
선수들은 프로리그 이후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최근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위로 선발된 조대성(삼성생명)은 “기존 시합들과 달리 긴장감이 많다”며 “긴장되는 시합을 하게 되니까 국제대회 같은 환경이 주어졌을 때 적응이 빨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긴장감을 높이는 요인은 ‘1매치 3게임제’의 도입이다. 프로탁구리그는 ‘팀 대 팀’ 한 경기가 최대 5매치(단·단·복·단·단식)로 구성되며, 각 매치는 3게임 2선승제로 치른다. 기존 5게임제와 비교해 경기시간 단축은 물론 실수를 만회할 기회도 줄어들었다.
조대성은 “승부가 빨리 나고 실수를 하면 게임이 어려워진다”며 “당장 몸은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나 전술적으로 게임 운영능력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부 포스코에너지 전혜경 감독 역시 “5게임제에선 역전할 여유가 더 있었지만 3게임제에선 빨리 적응하지 못하면 자칫 한국에서 랭킹이 가장 높은 전지희(포스코에너지)도 미끄러질 수 있다. 벤치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27일 현재 코리아리그 남자부는 삼성생명(승점 41)이 1위를 달리는 가운데 국군체육부대(39점)와 미래에셋증권(33점)이 상위권에 있다. 여자부는 국가대표 전지희·김나영을 보유한 포스코에너지(29점)가 1위에 올라있고, 삼성생명(26점)과 대한항공(25점)이 바짝 뒤쫓고 있다.
안재형 KTTL 초대 위원장은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시작에 의의를 둔다”며 “국내리그 성장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경기를 보는 어린 학생들에게 동기유발 효과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번째 시즌에는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 더 나은 리그를 치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기 시즌에는 임대 형식의 외국인 용병제 도입 등을 논의 중이다. 경기 일정 및 시간대와 관련해서도 아쉬운 목소리가 있다. 현장에선 선수들의 사기 진작 유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탁구계의 ‘파주 NFC’
탁구전용체육관은 프로리그와 함께 탁구 인프라 조성의 양대 축이다. 대한탁구협회는 강원도 및 홍천군과 지난달 28일 홍천탁구전용체육관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 연면적 9000㎡(약 2700평),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탁구전용체육관이다. 2024년 6월 완공이 목표다.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은 지난 19일 강원도 홍천 탁구전용체육관 부지에서 “2024년은 대한민국 탁구 100주년이자 부산에서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해다. 파리올림픽도 열린다”며 “좋은 타이밍에 건립될 탁구전용경기장은 한국 탁구와 후배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천탁구전용체육관은 축구의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대표팀을 비롯해 연령대 대표팀의 합동 훈련 공간을 제공하고 생활체육을 위한 공간으로도 개방할 계획이다. 선수 발굴 및 육성을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도 한다. 이를 통해 아시아 탁구의 중심이 되는 게 목표다.
홍천탁구전용체육관 건립 조직위원장을 맡은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경기도 기흥 국가대표 훈련원이 한국 탁구 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 기억이 난다”며 “선수들이 편안한 공간에서 안심하고 대회를 치르고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고, 유소년 꿈나무를 키워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는 6월 1일 지방선거 이후 지자체장이 바뀌면 추진 과정에서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협회 측은 “지역발전을 위해 양당의 초당적 협력이 있었다”며 선거 이후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새로운 바람 일으킬까
최근 국가대표 선발전은 변화를 예고했다. 지난 24일 마무리된 2022 청두세계탁구선수권대회 및 항저우아시안게임 파견 탁구국가대표선발전에서 ‘젊은 피’가 대거 승선하면서다.
남자팀은 장우진(국군체육부대·27)이 1차전 1위로 가장 먼저 선발을 확정했고 조대성(20) 안재현(23·삼성생명) 황민하(23·미래에셋증권) 조승민(24·국군체육부대)이 2차 리그전에서 차례로 대표팀에 올랐다.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이상수(32·삼성생명)가 탈락하고, 정영식(30·미래에셋증권)이 대표팀을 은퇴하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여자팀은 세계랭킹 10위 전지희(30·포스코에너지)가 자동으로 선발됐고 김나영(16·포스코에너지) 이시온(26·삼성생명) 윤효빈(24·미래에셋증권) 김하영(24·대한항공)이 차례로 대표팀에 승선했다.
세대교체로 인한 기대와 우려는 공존한다. 남자팀은 장우진을 제외하면 세계대회 경험이 많지 않다. 조대성 조승민 황민하는 세계선수권대회 첫 출전이다. 주세혁 남자대표팀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새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도전적으로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여자팀은 베테랑 서효원(35·한국마사회)과 양하은(28·포스코에너지)이 빠졌지만 막내 김나영이 1차전을 1위로 마치며 가파른 성장세를 증명했다. 오광헌 여자대표팀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만큼 더 나아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