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불렀어?” 확진 3일째, 환청이 시작됐다

입력 2022-04-28 00:04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정신병력이 있는 이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신병력을 가진 이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에 더욱 취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진은 한 시민이 지난 26일 서울 강동구의 한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앞을 지나는 모습. 이한결 기자

지난달 배지연(26·가명)씨는 난생처음 환청을 경험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 이후 사흘째 되던 날, 홀로 방에서 격리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에 대고 “엄마, 나 불렀어?”라고 물었으나 “그런 적 없는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배씨를 부르는 소리는 엄마에서 지인들 목소리로, 다시 낯선 사람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밖의 가족들 소리와 창문 밖 소음이 들렸던 것으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귀 뒤에서 웅얼웅얼하는 소리까지 들리자 덜컥 겁이 났다. 그는 27일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날 리 없는 새벽 시간대에도 소음이 들렸다. 그제야 환청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바이러스가 키운 ‘마음의 기저질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정신병력을 가진 이들의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헤집기도 한다. 몸의 기저질환을 가진 이들이 바이러스의 공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처럼 과거 정신질환을 앓았던 이들은 마음의 기저질환으로 인해 정신 상태가 더 쉽게 악화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격리와 단절 속에 고립감이 스며들고 마음의 병 역시 깊어진다는 것이다.

환청을 겪었던 배씨 역시 2년여 전 불안장애와 우울증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이후 증상이 호전됐고, 이사를 하게 되면서 다니던 병원에서의 치료도 중단했다. 올 초까지만 해도 가끔 우울감이 들면 병원을 찾아 불안장애약 등을 처방받는 정도로 생활에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에 감염돼 격리에 들어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를 진료한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필수 자극조차 없는, 독방에 수감된 죄수들에게 흔히 발현되는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격리로 인해 정신질환이 악화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격리 기간 아무런 자극을 받지 못해 일시적인 환청 증상이 나타났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배씨는 평소 먹던 불안장애약 복용 용량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격리 기간 동안 과거 불안장애를 유발했던 경험이 계속 떠올라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방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그때의 감정이나 기억이 떠올라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점차 환청 증세는 사라졌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또다시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있게 되는 상황을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방에 있을 때는 계속 음악을 켜둔다.

코로나19 완치 후 한 달이 넘도록 위태로운 일상이 이어지자 배씨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마저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코로나에 걸리면 열이 나고 몸이 아픈 정도라던데 ‘나는 왜 이런 증상을 겪을까’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원망하는 마음이 커진다”고 했다.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마음

우울과 불면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 있는 이주현(35·가명)씨도 코로나19 확진 후 기존의 증상이 심해졌다. 두 달 가까이 잠들 수 없어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기도 했다. 수면 환경을 바꾸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잠들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면서 매일 신경이 곤두선 채로 지냈다. 자연히 몸 상태도 나빠졌다. 코로나19 확진 이후 기침이 이어졌고 폐렴과 기관지염까지 나타났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까지 동반됐다. 집 청소와 설거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나빠진 이씨는 결국 회사를 휴직했다. 그를 진단한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심한 감정기복에 머리가 멍해지는 증상이 이어지다 보니 대인기피 증상까지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이씨는 코로나19 이후 겪은 마음의 고통은 이전에 치료를 받던 우울감과는 다른 종류라고 말했다. 무기력감이 심하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불안감과 불면증이 심해지자 심리적으로도 무너졌다는 것이다. 이씨는 “코로나 후유증이 마치 도미노같다”고 전했다. 그를 진단한 병원은 외상후 스트레스와 불안장애 판정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정신병력이 있는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가 기폭제가 돼 자살률 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종익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병력이 있는 데다 코로나19를 겪게 되면 직접적으로 자살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우울증으로 증상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더 위험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나타나는 우울증은 일반 우울증과 달리 무기력증으로 나타나 치료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박종석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코로나로 우울증이 나타난 환자를 살펴보면 무기력증이 더 심해 ‘치료 순응도’가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의사가 제시하는 치료를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회복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얘기다.

코로나19로 인해 겪는 정신과적 증상들을 ‘예민하다’ ‘유난 떤다’라는 식으로 개인 의지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도 정신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코로나19로 인해 겪는 정신과적인 증상을 개인의 의지로 보는 시선은 위험하다”며 “정신과적인 증상을 ‘개인이 약해서’라고 낙인찍는 시각들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변의 그런 반응들이 회복 속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증상의 차이와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