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가치 산업 분배” VS “가정해체·금융허브 소멸” [스토리텔링경제]

입력 2022-04-28 04:05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주요 공기업 지방 이전을 공약한 가운데 KDB산업은행이 유력한 시범 케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은행 본점 이전 예정지인 부산시는 크게 환영하고 있지만 은행 직원들과 본점이 위치한 서울의 정치인들은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묻지마 이전’에 앞서 그간 지방으로 옮긴 금융 공기업의 실태와 이전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실제로 나타났는지 중간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효과 4조원” vs “효과 미미”

이전 찬성 측이 주장하는 근거는 생산유발, 일자리 증가 등 긍정적인 경제효과다. 부산시에 따르면 산은 본점 신축, 운영 등으로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에 나타나는 경제효과는 4조원에 육박한다. 생산 유발효과가 2조4076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1조5118억원이다. 취업 유발효과도 3만6863명에 이른다.

주요 국가산업기반이 서울 등 수도권에 몰려 있는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도 이전 찬성 측 근거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분야별 핵심 기관을 지역별로 고르게 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금융·보험업의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66.2%다. 고부가가치 산업을 전국에 고르게 분배해 일자리, 투자,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산은의 주력 지원 분야인 조선·자동차·석유화학 등 국가기간사업이 동남권에 몰려 있다는 점도 이전이 필요한 이유로 제시된다.

반면 반대론을 펼치는 이들은 공공기관 몇 곳이 이전한다고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산은 노동조합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하고 수년이 지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수도권 지역 실질소득은 13% 상승했지만 혁신도시는 1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격차(1.7%)는 2013~2016년 조사에서 3.3%로 벌어졌다. 이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무용론’의 주요 근거로 쓰이고 있다.


가정이 무너지고 조직이 무너지고

산은 임직원은 ‘가정 해체’를 가장 걱정한다. 갑자기 320여㎞ 떨어진 곳으로 직장이 바뀌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부산시는 국가균형발전 명분으로 2005년부터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국책금융기관을 포함해 금융기관 29곳을 유치했다. 이들 기관 임직원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63.8%에 불과하다. 첫 이전 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10명 중 4명은 ‘기러기 아빠’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무리한 지방 이전에 따른 기관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지방 이전을 완료한 주요 공공기관의 2016년 대비 2020년 영업이익 적자 폭은 대부분 확대됐다. 국민연금공단은 340억8700만원, 신용보증기금은 1076억4700만원, 기술보증기금은 375억400만원의 추가 적자를 냈다. 서울의 국제금융센터지수(GFCI)도 2015년 세계 7위에서 지난해 9월 13위로 주저앉았다.

경쟁력 약화의 핵심 요인은 인력 이탈이다. 산은은 부산 이전이 최종 결정되지 않았음에도 2030세대 직원 사이에서 ‘엑소더스(대탈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수백조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도 2017년 본사가 전북 전주로 내려간 이후 계속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연금은 투자은행(IB)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을 영입해 자금을 운용해 왔는데, 이제는 운용역 정원도 채우기 힘든 실정이다. 국민연금 운용의 핵심 부서인 기금운용본부에서는 수탁자책임실장(2020년 7월), 부동산투자실장·인프라투자실장(2021년 10월) 등 간부들의 줄퇴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본사가 지방에 있는 탓에 글로벌 투자자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생활 여건도 좋지 않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균형발전 맞나” vs “시간 지나면 해결”

산은 이전이 전체 국토의 균형발전보다 부산이라는 특정 지역을 위한 정치적 행위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실제 부산으로 이전한 캠코 예탁결제원 한국남부발전 주택금융공사 등을 보면 전부 부산 남구 BIFC(부산국제금융센터)에 입주해 있다. 공공기관을 고르게 분산시켜 경제효과를 유발한다는 취지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반면 이들이 근무하는 곳은 도심이지만 주중에는 인근 주택지역에 머물며 소비를 하므로 장기적으로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 정부부처가 이전한 세종시나 기업·대학이 이주한 송도국제도시 등도 이전 초기에는 경제적 효과가 미미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구가 늘고 경기도 활성화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경제가 정치화된 결과’라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다른 산업과 달리 금융은 한곳에 집적돼 있을 때 최대 시너지를 발휘한다”며 “이미 서울 여의도에 금융 중심지가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이것을 부수고 다른 곳에 중심지를 형성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은을 이전시키고 나면 같은 논리에 따라 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등도 모두 전국에 분산시켜야 이치에 맞는다”며 “이 과정에서 왜 부산에만 특혜를 주느냐는 지적이 다른 지역에서 제기되면 최악의 상황에는 대한민국에서 금융허브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