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힘이 없다고 느낄 때

입력 2022-04-29 03:05

고통은 자연스럽게 기도를 작동시키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고통은 적절한 자극이 되어 하나님의 사인을 발견하게 해주고, 기분 좋게 두 손을 모으고 무릎 꿇을 마음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과 관계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마음을 찢어 놓는 고통과 마주하면 성도들에게 기도는 고장 나 버리기 쉽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사랑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어느 봄날의 순간들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89세, 바로 하루 전날까지도 점심을 차려주셨던 정정함을 가지고 계셨는데, 눈앞에서 휘청거리면서 쓰러지셨을 때 마음에서는 지진이 난 것처럼 쿵 소리가 났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할머니의 죽음은 무엇인지 확실히 체감됐기 때문입니다.

예리한 칼날이 마음을 한 겹 한 겹 찢는 것처럼 조각나 버렸습니다. 그렇게 흩어진 마음으로는 예리한 기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친척들과 교회 성도들이 도와주셔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2주 동안의 시간을 간신히 버텨낼 수 있기는 했지만, 그 시간 속에서 드렸던 기도는 너무나 무력했습니다. 10년도 넘는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그 순간의 좌절이 기억하지는 않아도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기도가 진짜로 필요한 순간에는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큰 사고를 당해 병원에 가는 중이거나, 죄를 지어 영혼이 깊은 늪에 빠져들어 가고 있을 때,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말입니다.

기도하고 싶은데 내 속에서 적절한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간신히 짜내 튀어나온 말들이란 당장 눈앞에 있는 거대한 상황을 잠재우기엔 너무나 작아 보입니다. 힘이 전혀 실리지 않는 문장들만 나열될 뿐입니다. 이때 ‘기도문’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이 책 ‘밤에 드리는 기도’는 밤 기도라는 낯선 교회의 전통을 깊이 묵상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잘 버무려 마침내 기도를 해 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유의 깊이와 언어의 넓이가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잘하고 싶은 영역에서 마땅히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하곤 합니다. 노래 운동 요리 등. 그런데 왜 기도에는 그런 따라 하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중세 교부들과 경건한 신앙 선배들은 기도문을 외우고, 그것을 읊조리며 기도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이 책은 밤 기도의 한 절 한 절을 통해 우리 삶에 놓인 불안과 두려움, 질병과 죽음, 혼돈과 공허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아니, 기도를 통해서 우리 삶에 놓인 이것들 사이로 하나님이 뚜벅뚜벅 들어오시는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돕습니다.

거룩한 습관은 평소에도 유익을 가져다주지만, 절체절명의 기도가 필요한 순간에 빛을 발합니다. 거대한 상황 앞에서 내가 가진 단어와 문장들이 한없이 초라해 보여 그분 앞에 이 모든 상황을 위치시킬 수 없을 때, 평소에 외워둔 적절한 기도문을 소리를 내어 외우는 것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합니다. 별은 밤을 만나야 반짝입니다. 언젠가 그 기도의 문장들도 어두운 밤을 맞이했을 때 빛나는 별처럼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김정주 남산교회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