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전체 헌혈 건수가 줄었지만 지정헌혈은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지정헌혈은 수혈자를 지목해 혈액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특정인이나 특정병원으로의 ‘혈액 쏠림’ 현상이 나타나 보다 위급한 환자들이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모(40)씨는 지난 1월 어머니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직후 병원으로부터 “항암치료 과정에 혈소판 수혈이 필요하니 지정헌혈을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19 여파로 혈액이 부족한 상황이니 지정헌혈로 미리 혈액을 확보하는 게 좋다는 설명이었다.
지정헌혈은 수혈 우선순위를 대한적십자사에서 정하는 일반헌혈과 달리 헌혈을 받을 환자를 미리 지정하는 방식이다. 본래 희귀혈액형 혈액 등을 공급하기 위해 생긴 제도지만 전체 헌혈 건수가 줄고 있어 환자와 가족들이 혈액 확보 차원에서 지정헌혈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씨는 지정헌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과 카카오톡 단체채팅방 등에 사연을 올렸다. 이를 통해 지난 2월 초 1차 항암치료와 이달 2차 항암치료 때 이런 플랫폼을 통해 두 번씩 지정헌혈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전체 헌혈 건수는 매년 감소했지만 지정헌혈은 크게 늘었다. 2019년 4만3794건(1.68%)에 그쳤던 지정헌혈은 지난해 13만7213건(5.65%)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올해 지정헌혈은 지난 26일 기준 5만3769건(7.71%)으로 이미 2019년 전체 건수를 훌쩍 넘어섰다.
일반헌혈 대신 지정헌혈을 택하는 경우가 늘자 지정헌혈을 요청하는 플랫폼에는 매일 새로운 사연이 등록되고 있다. ‘지정헌혈’이란 이름의 앱에는 27일까지 8200여건, 지난달 2일 개설한 피플 웹사이트엔 239건의 지정헌혈 요청이 있었다. 지난 17일 76번째 헌혈을 한 이상수(28)씨는 “2주마다 헌혈을 하는데 예전에는 일반헌혈을 했지만 이제는 필요한 사람에게 혈액이 전달된다는 걸 알 수 있어서 지정헌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체 헌혈 건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지정헌혈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기준 대한적십자사 혈액보유량은 4.9일분으로 적정보유량(5일분)에 못 미친다. 회복 추세긴 하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한때 2일분까지 떨어진 적도 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지정헌혈자 대부분은 정기적으로 헌혈에 참여하시는 다회헌혈자로, 지정헌혈로 혈액이 특정환자나 특정병원에 몰리면 다른 환자나 병원은 상대적으로 더욱 혈액을 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