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서 ‘문’이란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이다. 호텔 객실 문 또한 마찬가지다. 객실 복도를 지나 가장 프라이빗한 나만의 공간을 위한 마지노선으로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 요소다. 하지만 더 중요한 막중한 임무가 있다. 호텔 객실의 문은 문 그 이상의 기능이 작동을 해야 하는 특별 임무를 맡고 있다.
우선 글로벌 호텔들의 객실 문 두께는 최소 45㎜로, 최소 50-55 STC(Sound Transmission Coefficiency)의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다. 이는 건축 관련 자재의 소음 차단 성능 지수다. 녹음실이 STC 50-65 수치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 호텔 객실이 어느 정도의 소음을 차단하는지 상상이 간다. 비싼 숙박비를 내고 하룻밤을 머무는데 소음으로 밤잠을 설친다면 불만이 배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기에 호텔에선 객실 안의 소음 차단에 사활을 거는 노력을 한다.
소음 차단은 객실의 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문만 두꺼우면 되는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소음이 많이 유입되는 곳은 어디일까? 객실과 복도 사이가 그중 한 곳이다. 당연히 객실 복도에는 카펫을 설치해 소음이 흡수되게 한다. 그다음은 바로 문과 바닥 사이의 틈을 주시해야 한다. 미세한 틈이지만 이곳을 소홀히 여긴다면 소리가 새어 들어온다. 그래서 객실 문 바닥에는 소음 차단제가 있다. 이 소음 차단제로 브러시(brush) 또는 고무 튜브가 문 바닥 안에 숨겨져 있는데 객실 문을 닫으면 작동이 된다. 문 바닥에서 내려와 미세한 틈을 메꿔준다. 문의 밑을 만져보면 손에 무엇인가 만져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로도 부족하다. 문틀의 상하좌우에 고무 튜브를 설치해 완전 무장을 한다. 국내 콘도에서 객실 안에 있어도 마치 밖에 있는 것처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말소리, 발자국 소리들이 생생하게 들리는 이유는 이런 은밀한 장치들의 부재이기도 하다.
소음 차단뿐이겠는가. 화재와 안전이란 측면에선 007 못지않다. 글로벌 호텔들의 육중한 객실 문은 화재 시 최소 20분은 견디며 고객 보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화재 시 어느 경로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를 평면에 표기해 문에 설치해야 한다. 화재 시 우왕좌왕하는 것을 막아주기 위함이다. 안전은 어떻게 보장해줄까? 여러 겹의 장치가 설치돼 있다. 누군가 벨을 누르면 문을 열기 전에 객실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조그만 렌즈처럼 생긴 핍홀(Peep Hole)이 있다. 그리고 객실 문은 3가지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다. 키카드로 작동이 되는 도어록, 도어록에 같이 설치된 수동 잠금장치, 만약에 문이 열리더라도 완전히 열리지 못하게 체인록이 설치돼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평상시에 문이 열리더라도 다시 자동으로 완벽히 닫히도록 해주는 도어 클로저가 문의 맨 위 상단에 설치돼 있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문에도 이렇게 수많은 크고 작은 장치가 설치돼야 하는 이유는 고객의 안전하고 편안한 스테이를 위한 것이다. 화려한 조명의 아름다운 공간으로 보이는 호텔의 구석구석에는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이의 생각이 녹아 있다.
한이경 폴라리스어드바이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