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다단한 인간사를 하나의 서사로 설명할 길은 없다. 그래서 옛 일왕을 파시스트로 지목했다 번복한 우크라이나 정부를 놓고 조금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일본 제국주의 역사 문제라면 피해국으로 얽힌 우리나라에서 못 본 체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일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1일 트위터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체제의 러시아 정권을 파시스트 집단으로 규정한 81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그중 71초 지점부터 약 3초간 흘러간 장면이 일본 정치권의 반발을 불러왔다. 우크라이나는 이 장면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지도자인 나치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 이탈리아 파시스트당 당수 베니토 무솔리니, 당시 일왕 히로히토의 얼굴 사진을 나란히 붙이고 ‘파시즘은 1945년에 끝났다’고 적었다. 다음 장면에 등장한 건 푸틴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푸틴 사진 밑에 ‘우리는 지금 러시즘(Ruscism·러시아 파시즘)과 싸우고 있다’는 문구로 세계의 지지를 호소했다.
영상에서 히로히토를 파시스트로 지목한 장면이 일본의 심기를 긁은 건 한참 지나서였다.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게시물로 가득한 우크라이나 정부 트위터 계정이 지난 23일부터 난데없이 일본 네티즌의 성토장으로 바뀌었다. “성심껏 응원했지만 배신을 당했다.” “우리를 파시스트로 여기는 국가를 지지할 수 없다.” 2차 대전 당시 히로히토는 입헌군주제의 실권 없는 군주였으니 전쟁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사토 마사히사 외교부회 회장은 정부 차원의 항의를 외무성에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곧 “외교 채널을 통해 영상을 수정하도록 우크라이나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의 전개는 인터넷상에서 촉발돼 국가 간 외교 사안으로 번진 여러 역사 논쟁의 흐름과 다를 게 없다. 복잡한 감정을 일으킨 건 이후의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히로히토를 빼고 히틀러와 무솔리니 사진으로만 재구성한 영상을 지난 24일 트위터에 올리고 “일본에 진심으로 사과한다. 실수를 바로잡았다”고 적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아시아 역사 문제에서 일본의 항의를 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이를 받아들여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을 부정한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일제 침략전쟁의 대부분은 1926년 히로히토 즉위 이후에 벌어졌다. 일제는 1931년 만주를 침공했고,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을 연달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은 물론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 점령지의 민간인이 군인, 노동자, 성노예로 강제 동원됐다. ‘히로히토를 위해 일제 치하의 1억 인구가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져 죽어라.’ 일제의 전쟁 동원령 ‘일억 옥쇄’는 그런 의미였다. 일본군이 연합군 전함·탱크로 돌격해 자폭하면서 외쳤던 ‘반자이(만세)’는 히로히토를 향한 충성의 맹세였다. 하지만 히로히토는 일제 패망 이듬해인 1946년부터 2년 넘게 진행된 연합군의 전범재판에서 기소되지 않았다. 당시 연합군최고사령부는 일본에서 신격화된 히로히토를 전범으로 처형할 경우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히로히토는 전범의 오명을 쓰기는커녕 목숨을 연명했다.
히로히토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평가에서 아시아 역사에 관한 이해가 반영됐는지 알 길은 없다. 히로히토를 ‘허수아비 군주’로 보고 파시스트로 규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제 군부의 실세였고 전쟁 원흉인 당시 총리 도조 히데키를 히틀러와 무솔리니 옆에 둔 영상으로 정정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한 푸틴의 오판도 결국 역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 푸틴은 개전을 앞두고 자신을 만류하기 위해 찾아온 유럽 정상들에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역사를 들먹이며 ‘네오 나치 척결’을 명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옛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치 독일군에 협력했던 2차 대전 당시 우크라이나의 민심을 푸틴은 인정하지 않았다.
코로나19 대유행에서 2년의 고립이 인류에게 안겨준 또 하나의 재앙은 분열이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들려오는 ‘제3차 세계대전’ ‘핵전쟁’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을 떨쳐내려면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중단할 수 없다. 그게 지난 세기 전쟁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서로를 부정하고 생떼를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김철오 온라인뉴스부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