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선진국과 리더국

입력 2022-04-28 04:08

‘한국은 선진국인가요?’ 인터넷에 오를 때마다 논쟁을 일으키는 주제다. ‘손흥민은 월드클래스인가요’ 이슈만큼이나 찬반으로 팽팽하게 갈렸던 여론은 지난해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정상회의 이후 ‘한국은 선진국이 맞다’로 쏠렸다.

당시 의장국이던 영국을 비롯해 각국 정상이 보여준 ‘한국 우대’가 한국 네티즌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다. 정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은 문재인 대통령이 맨 앞줄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이에 서서 단체 사진을 찍은 걸 부각시키며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격이 드러났다’거나 ‘한국은 후발 추격 국가에서 G7과 대등한 선도국가가 됐다’고 홍보했다. 사진 촬영 자리 배치는 취임 순서와 대통령이냐 총리냐에 따른 거였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 장면 등에 묻혔다. 여기에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어딘지 모르게 어정쩡한 모습으로 촬영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대비되면서 ‘한국은 G8 국가’에 자리매김했다는 분석마저 나왔다.

사실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1991년 국제통화기금(IMF)을 시작으로 96년 세계은행과 유엔이 우리를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시기는 조금씩 달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거의 모든 국제기구와 단체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한다. 이뿐인가. 2010년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면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됐다. 유엔무역개발회의는 지난해 7월 한국을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기구 설립 57년 이래 이렇게 격상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라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지난 1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국회도서관 대강당 화상 연설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우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먼저 제안해 이뤄진 연설인데 국회의원 300명 중 50여명만 참석했다. 앞서 다른 국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 스물세 차례 연설에선 볼 수 없던 민망한 장면이었다. 그나마 참석 의원 중 일부는 15분 연설 도중 졸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댔다. 연설 끝에는 숨진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영상이 이어졌다. 통역하던 우크라이나 여성은 그 참상에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데도 의원들은 자리에 앉아 뜨뜻미지근한 손뼉만 쳤다. 전쟁 중인 나라의 대통령을 불러놓고 정치의 민낯을 드러낸 셈이다.

일본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지난 3월 일본 국회에서 열린 연설에는 500명의 국회의원이 연설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연설을 경청하려고 일어난 일본 의원들도 여럿이었다. 연설이 끝나자 기립 박수가 터졌다. 미국도 영국도 호주도 아일랜드도 핀란드도 마찬가지였다. 각 나라 의원들은 기립 박수를 치며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열정적인 지지를 보냈다.

부끄러웠을까.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회 연설 동영상에는 “대다수 한국 국민이 큰 관심을 두고 지켜봤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이여. 국회의원의 참석자 수에 연연하지 마십시오”라는 한국인이 쓴 영어 댓글이 올랐다. 러시아의 한 대학 교수는 트위터로 “최소 참석자 수를 기록한 한국 국회를 보라”거나 “한국은 러시아 킹크랩에만 관심을 둔다”고 비꼬았다. 요즘 말로 국격이 살살 녹아버렸다.

K열풍이 세계를 강타하고 대통령이 G7에 초청받았다고 해서 진짜 선진국이 되는 건 아니다. 국제사회의 희생으로 전쟁의 폐허를 극복한 한국이 정작 우크라이나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국제적 우스갯감이 되다니 안타깝다. 다시 선진국 논란을 정리해 보자. 한국은 선진국이다. 그런데 경제 선진국이지 국제사회 리더국은 아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을 보니 참 그렇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