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의 집값은 요동쳤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월 4주차에 상록구의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변동률은 0.48%에 달했다. 상승률이 월초(0.03%)의 16배로 치솟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월 2주차에는 1.12%를 찍었다. 같은 시기(2월 2주차) 경기도의 평균 매매가격 변동률은 0.46%였다. 경기도 전역의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때였지만 상록구의 상승률은 비정상적으로 컸다.
2월 2주차에 경기도에서 상록구와 비슷한 수준을 보인 곳은 의왕(1.07%)과 양주(0.98%) 정도였다. 그런데 이 지역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바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노선의 수혜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GTX는 노선 계획에 작은 변화만 생겨도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뇌관이었다. GTX의 장점은 ‘수도권광역급행’이라는 개념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서울 집중이 심한 한국에서 ‘서울로 향하는 편리하고 빠른 교통수단’은 언제나 최대 관심사다.
그런데 최근 들어 GTX가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계획 당시보다 훨씬 세졌다. 시장 환경이 급변해서다. 우선 GTX 영향을 받는 인구부터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6만7366명이 서울을 떠났다. 이 가운데 36만2116명(약 64%)은 경기도로 전입했다. 이렇게 서울을 떠난 시민 2명 중 1명은 2030세대였다.
2030세대의 ‘탈서울’이 본격화한 건 지난 수년간 이어진 집값 상승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경제활동이 한창인 이 세대 가운데 다수는 직장을 서울에 둔 채 거주지만 옮겼다. 가뜩이나 서울과 경기권을 잇는 광역교통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출퇴근길의 어려움을 체감하는 수도권 시민이 늘었다는 뜻이다. 이제 정부와 시장은 제대로 된 도시 건설과 인구 분산 정책을 더 강력히 원하게 됐다.
정부는 GTX를 통해 서울까지 30분 안에 출근 가능한 지역을 늘릴 계획이다. 이른바 GTX-D, E, F 노선도 만들겠다는 발언이 나왔다. 수도권을 1만~2만 가구 규모의 콤팩트시티를 연결하는 메가시티로 만들겠다는 큰 그림이다. GTX는 콤팩트시티 사이의 느슨한 연결을 이어주는 매듭이다.
그러나 집값 안정이라는 관점에서 GTX는 ‘불쏘시개’다. 노선이 깔린 지역의 가치를 크게 높여줄 수밖에 없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 대표는 “시장에서 현재 신도시에 대한 평가는 하남 교산이 고양 창릉보다 좋다. 하지만 GTX-A가 들어가면 창릉의 강남 접근성이 크게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양시는 GTX-A 노선 착공 전후로 집값이 크게 올랐다. KB부동산에 따르면 고양시 집값은 2018년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0.67% 뛰었다. 노선의 방향에 따라 옛 시가지와 신시가지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는 ‘신작로 효과’가 재현된 셈이다.
공급 부족으로 부동산 시장 전반이 상승세를 경험한 걸 감안하면 GTX 건설에 따른 집값 상승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치솟던 안산 상록구 집값은 지난해 6월 뒤집혔다. GTX 정차역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생기면서다. 지난 2월 3주차에는 보합(0.00%)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지난 2월 GTX-C 노선의 상록구 정차가 다시 공식화했다. 2월 4주차 집값은 0.16% 올랐다. 전주에 비하면 크게 오른 셈이지만 과거보다 상승세가 제한적이었다. 경기도 전체 평균이 0.03%에 머무르는 등 시장 전반의 분위기가 경직된 상황에서 독주할 만한 여건이 아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록구 집값은 3월 1주차에 언제 그랬냐는 듯 보합으로 돌아왔다. 다른 GTX 수혜 지역도 각자 조정기를 맞이했다.
가장 먼저 착공에 들어간 GTX-A 노선이 서울 접근성을 실제로 얼마나 높여주는지에 따라 집값에 다시 변동이 생길 수 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A노선 착공 이후 B·C노선에 따른 집값 상승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본다. 준공까지 2년을 남긴 A노선 지역의 지난 2년간 집값 상승 폭은 B·C노선 지역보다 월등히 높았다.
노선 신설에 따라 수도권 집값은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새 정부는 GTX-E 노선(인천 검암, 계양, 김포공항, 디지털미디어센터, 신내, 남양주 다산, 양정)과 F노선(경기 고양, 서울, 부천, 시흥, 안산, 화성, 수원, 용인, 성남, 하남, 남양주, 의정부, 양주, 고양을 잇는 수도권 순환 노선)을 공약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GTX를 둘러싼 큰 계획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고 대표는 “순환선(GTX-F)은 아직 계획이 막연한 데다 기존 노선도 중복되는 곳이 있어 위치를 잘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GTX 노선이 확장될수록 국토 균형발전의 고민은 깊어진다. 업계에서는 GTX 효과를 ‘주거는 분산, 상업은 빨대’로 표현한다. 도심 접근성이 좋아질수록 거꾸로 수도권 외곽 도시들은 상업 기능이 사라진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게 된다. 수도권 밖 지역에서는 균형발전 저해를 우려하며 GTX 연장노선 편입을 요구한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