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투자 관련 국제분쟁 전망은 가시밭길이다. 마무리 국면에 들어간 론스타와의 소송 말고도 승소 가능성이 불투명한 대형 투자자-국가 소송(ISD)이 3건 더 있다.
26일 정부 국제투자분쟁대응단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ISD 중 소송액이 가장 큰 것은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미국계 사모펀드 메이슨캐피탈매니지먼트가 제소한 건이다. 이들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서 우리 정부(국민연금공단)가 불공평한 합병을 유도한 탓에 투자손실을 입었다며 2018년 ISD를 제기했다. 각각 7억7000만 달러(약 9636억원)와 2억 달러(약 2503억원)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스위스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쉰들러도 2018년 1억9000만 달러 규모의 ISD를 제기했다. 쉰들러는 2013~2015년 이뤄진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 및 전환사채 발행이 상법을 위반했음에도 금융감독 당국이 이를 묵인해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배상 청구액이 5조원대인 론스타 ISD에는 못 미치지만, 이 3건의 배상 요구액만 더해도 11억6000만 달러(1조4529억원)다. 한국 정부가 패소하면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국민 혈세로 지급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19년 패소한 이란 다야니가(家)와의 ISD 과정을 보면, 정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대우일렉 채권단과 다야니가문의 분쟁일 뿐 국가와는 상관없다’는 논리로 소송에 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공공기관의 투자 방향을 정부가 정하고 최종책임도 사실상 정부가 지는 구조 특성상 ‘정부와 캠코는 관련 없다’는 논리는 애초에 말장난에 불과했다“면서 “국제분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당연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엘리엇·메이슨과의 ISD에서도 한국은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은 관계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중재재판부가 비슷한 논리로 패소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큰 만큼 전략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국제분쟁을 전담할 인력을 육성하고 민간 전문가도 적극적으로 영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추진 중인 국제분쟁 대응 범정부 조직 설치에 대해서는 “통상 국제분쟁에는 금융·산업·통상·법무 등 다방면에 걸친 전문 역량이 요구되는 만큼 신중한 구성이 필요하다”며 “대형 로펌 등에서 민간 전문가를 위촉해 수시로 대응 상황을 확인하는 등 장기 전략 수립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