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에는 20여년에 걸친 한국 정부와 론스타의 질긴 악연이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것이 마지막이란 보장은 없다. 전문가들은 ‘제2의 론스타’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국제 협정과 관련 국내법을 정비해 외국 자본들이 한국 제도의 취약점을 악용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투자보장협정(BIT) 조세협약(이중과세방지협약) 등 한국이 외국과 맺은 조약의 취약성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벨기에 등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차려놓고 국내 자산에 투자하고 되파는 방식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기는 방식이다. 외환은행 매각 사태뿐 아니라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 극동건설 등에 대한 투자가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뒤늦게 국세청이 모두 8500억여원의 세금을 부과했지만 론스타는 과세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
론스타는 이에 그치지 않고 BIT에 포함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제도를 통해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BIT는 국가 간에 투자를 촉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외국 투자자나 기업의 사업활동, 이익 송금 등을 상호 간에 보장하기 위한 협정이다.
문제는 이 협정이 보호해주는 범위다. 한국과 벨기에 간 BIT는 페이퍼컴퍼니까지 투자자로 간주해 보호한다. 2019년 체결된 아르메니아와의 BIT 등 최근 협정에는 페이퍼컴퍼니를 보호 대상에서 배제하는 ‘혜택의 부인’ 조항이 포함되는 추세지만 벨기에와 체결할 당시 BIT에서는 이 조항이 빠져 있었다. 론스타는 이 점을 공략했다.
제2의 론스타 사태를 막기 위해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추세에 뒤처지는 협정들을 손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오래전 맺은 BIT들은 투기 기업에 유리한 조항이 다수 남아 있다”며 “단기 투자자본에 대한 정당한 규제 권한을 포함하는 등 개정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발효 중인 84개 BIT 중 86%에 해당하는 72개에 ‘혜택의 부인’ 조항이 빠져 있다. ISD 소송 제도 자체를 포함하지 않는 BIT는 6개뿐이다. 신속하게 조항을 개정하지 않으면 그사이 발생하는 사건에서 또 불리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고 정책 실패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사법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론스타 ISD가 1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데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밝혀진 게 거의 없다”며 “소송 중이라 민감한 자료라면 적어도 전문가 집단과는 공유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정책의 사전적인 합리성이 심각하게 결여된 경우 주무 부처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