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0일 청와대 완전 개방을 앞두고 과거 국가지도자가 머물렀던 공간이 주목받고 있다. 역대 대통령이나 왕의 별장 등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서다. 충북 청주에는 ‘남쪽의 청와대’로 불리는 대통령의 쉼터 청남대와 조선시대 왕들의 별궁 초정행궁이 있다.
청주시의 남쪽인 문의면에 위치한 청남대의 원래 이름은 영춘재(迎春齋)였다. 대청호를 배경으로 피어나는 꽃과 아름다운 자연 덕에 봄을 느끼기에 제격인 장소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3년 만에 봄꽃 축제인 ‘영춘제’가 다음달 8일까지 개최중이다.
청남대는 영욕의 현대사가 교차하는 곳이다. 신군부가 주도한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뒤 이곳 풍광에 빠져 쉴 만한 곳을 조성하라고 지시했다. 83년 6월 공사를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대통령이 주관하는 연말 행사를 이곳에서 치러야 한다는 이유로 6개월 만에 본관을 비롯한 주요 시설이 들어섰다. 약 20년이 흘러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3년 4월 18일 대통령만의 공간은 만인을 위한 공간으로, 권위와 폐쇄가 아닌 자유와 개방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청남대는 대통령 별장답게 볼거리가 풍성하다. 수려한 자연환경은 물론 대통령의 유품,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던 내밀한 가옥까지 볼 수 있다. 경내로 향하는 길에 튤립나무 가로수 터널이 인상적이다. 청남대는 골프장으로 쓰이던 잔디밭과 그늘집, 헬기장, 양어장, 오각정, 초가정 등의 시설을 갖췄고 13.5㎞의 산책로도 마련돼 있다. 100여종 5만2000여 그루 조경수와 130여종의 꽃으로 이뤄져 사계절 아름다운 정원이다. 184만4000㎡ 규모인 청남대를 모두 둘러보려면 예닐곱 시간은 잡아야 한다. 시간을 아끼려면 본관→봉황의 숲→대통령기념관→임시정부기념관→초가정 순으로 보는 게 좋다.
본관 가는 길의 조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길옆으로 말쑥하게 단장된 80여년 수령의 반송 32그루가 반기고 그 옆으로 잔디밭이 탁 트여 있다. 잔디밭은 과거 헬기장으로 이용됐다고 한다. 한가운데 거대한 봉황 모양의 정크아트 작품이 이색적이다. 본관 1층은 회의실·접견실·식당, 2층은 침실·서재·거실·가족실로 구성돼 있다.
그 옆 언덕 위 ‘봉황의 숲’에 들어선 전망대 봉황탑에 올라서면 청남대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봄꽃으로 물든 청남대와 푸른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이 장관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과거 양어장에 들어선 음악분수대를 가로지르면 청와대 본관 건물을 60% 정도로 축소해놓은 대통령기념관이 나온다. 대통령기념관 집무실과 브리핑룸에서 대통령처럼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인근에 84년 심어진 메타세쿼이아 100여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골프장으로 사용된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부터 주석 백범 김구까지 임시정부 행정수반 8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곳에 최근 대한민국 임시정부 행정수반의 혼과 얼을 되새기기 위한 역사교육·문화 공간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들어섰다.
초가정까지 뻗은 ‘민주화의 길’은 새벽을 깨우며 달리기를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추억이 서려 있다.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초가정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종종 사색에 잠겼던 곳이었다고 한다.
청남대 입구이자 대청호 맞은편에는 문의문화재단지가 있다. 75년부터 5년간 조성된 대청댐 수몰 지역의 유물을 옮겨와 공원처럼 꾸민 곳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초가와 기와집, 대장간 등 너머로 대청호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청주의 북쪽인 내수읍 초정리는 570여년 전 세종대왕이 찾았던 대표적인 왕의 휴양지다. 세종은 1443년 이곳에 행궁을 짓도록 명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마무리 작업으로 분주하던 시기다. 세종은 1444년 봄·가을 두 차례 121일간 머무르며 초정약수로 안질과 피부병을 치료했다. 성종 때 지은 ‘동국여지승람’에 ‘초수(椒水)는 그 맛이 후추 같으면서 차고,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 세종과 세조가 행차한 일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1448년 3월 전소돼 사라진 초정행궁이 편전과 침전 등 궁궐의 틀을 갖춘 모습으로 최근 복원됐다. 수라간에선 궁중음식을 체험할 수 있다. 행궁 한쪽에는 초정약수 원탕이 있다. 별도로 지은 건물(행각) 안에 둥그렇게 벽을 쌓은 대형 우물이다.
여행메모
청남대 방문 전 승용차 입장예약 편리
우렁쌈밥정식·삼겹살 특화거리 유명
청남대 방문 전 승용차 입장예약 편리
우렁쌈밥정식·삼겹살 특화거리 유명
청남대와 문의문화재단지는 당진영덕고속도로 문의청남대나들목에서 가깝다. 승용차로 청남대를 찾는다면 방문 전에 홈페이지에서 승용차 입장예약을 하면 좋다. 청남대 내 주차장까지 차를 갖고 갈 수 있다. 예약하지 않으면 청남대에서 12㎞가량 떨어진 문의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어야 하기에 다소 번거롭다. 청남대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00원. 매주 월요일과 주요 명절에는 문을 닫는다.
문의문화재단지에는 무료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문화재단지 입장료가 어른 1000원이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현재는 무료다. 초정리에 스파텔이 많다. 가까운 미원면에는 충북도립 미동산수목원이 있다.
문의면에는 우렁쌈밥정식을 파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청주 1호시장인 서문시장에 전국 유일 삼겹살 특화거리가 유명하다. 식당마다 삼겹살을 연탄불 석쇠 위에 얹어 구워 먹거나 간장소스, 파채, 파무침, 파절임 등으로 먹는다.
청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