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레드라인을 넘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엔 핵무기 사용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핵 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 억제이지만 근본 이익이 침탈되는 상황에선 둘째 사명을 결행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든 가동하도록 철저히 준비하라”고 했다. ‘둘째 사명’은 핵전쟁을 뜻한다. 핵무기의 용도를 전쟁억지에서 전쟁수행으로 확장한 것이다. ‘근본 이익 침탈’이란 모호한 표현을 써서 핵 사용 조건도 광범위하게 넓혀 놓았다.
이런 식의 도발과 위협을 우리는 그동안 협상을 위한 전술로만 해석했다. 미국의 관심을 끌고 몸값을 올리려 긴장을 키우는 거라 여겼다. 그러다 갑자기 대화에 나왔던 4년 전 경험은 이런 시각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북·미 협상의 치욕적 좌초를 경험한 북한이 여전히 같은 시나리오를 따르리라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지 모른다. 김정은은 이날 좌천됐던 핵개발 주도자 리병철을 다시 열병식 앞줄에 세워놓고 “핵 무력의 급속한 질량적 강화”를 주문했다.
국제 정세는 북한 비핵화를 점점 더 비현실적인 목표로 몰아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김정은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본다면, 핵을 포기한 나라가 핵을 보유한 나라에 유린되는 상황이다. 이는 그의 선택지에서 핵 포기를 지워낼 가능성이 크다. 북한 전문가 사이에선 김정은이 러시아의 관점에서 이 전쟁을 바라보고 있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핵을 가진 나라가 미국의 참전을 저지하며 이웃나라를 공격해 이익을 실현하는 모습에서 핵개발의 지향점을 찾으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를 모델로 삼을지 모른다는 이 가설을 공교롭게 김정은의 “핵무기 사용” 선언이 뒷받침하는 형국이 됐다. 북한의 도발과 위협을 협상 전술로 치부하던 시각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실체적 위기라는 인식 위에서 대응책을 찾아야겠다.
[사설] “핵무기 사용” 위협한 북, 러시아처럼 굴려 하는가
입력 2022-04-27 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