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 전부 가리고파’… 코로나 ‘오염 강박’에 무너진 삶

입력 2022-04-26 00:02 수정 2022-04-26 00:02
낮 최고 기온이 25도를 넘긴 지난 23일에도 정미주(20·가명)씨는 목을 완전히 덮는 긴팔 티셔츠를 입었다. 집 밖에 나갈 때는 더 ‘완전무장’을 한다. 양손에 장갑을 끼고 그 위에 비닐장갑을 한 겹 더 씌운다. 단추가 달린 옷도 절대 입지 않는다. 그는 25일 “(단추 사이의) ‘틈’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도 마찬가지였다. 정씨는 한여름에도 외부에 살갗이 드러나지 않도록 긴팔, 긴바지 차림에 장갑을 꼈다. 그 대가로 땀띠와 습진을 감수해야 했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보단 나을 거라고 여겼다.

그는 지난해 9월 ‘오염강박’ 진단을 받았다. 오염강박은 강박장애의 한 종류다. 외부 물질에 노출되면 감염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불안해지고 동시에 오염을 없애려는 행동을 반복하는 증세다. 불안장애와 우울증, 양극성장애(조울증)를 동반하기도 한다. 정씨는 “2년 동안 ‘코로나 세상’에 나 자신이 잡아먹힌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를 지켜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오염강박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대부분 아예 외부 활동을 차단하는 행동을 보이는데, 정씨는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의지가 상당히 강했다”며 “어떻게든 외출을 하면서 일상생활을 하려다 보니 옷으로 꽁꽁 싸매는 식으로 강박이 발현됐는데, 결국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 돼 안타깝다”고 했다. 정씨는 불안 증세를 완화시키는 약물치료와 함께 ‘바이러스에 걸려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내용의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 중이다.

엄마의 강박, 아이의 강박으로

아이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더 키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감염병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일상을 집어삼키고 마음의 병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송연희(33·가명)씨의 네 살 난 딸은 태어날 때부터 기관지가 약했다. 2년 전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을 찾은 적도 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자 주치의는 “코로나에 감염되면 더 취약할 수 있다”고 주의를 줬다. 그러자 송씨는 가급적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했다. 그는 “마트에 가본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필요한 물품은 주로 택배로 주문해서 쓰는데, 택배 상자를 집에 들여놓을 때도 소독 스프레이를 뿌리고 사흘가량 그냥 뒀다가 상자에 손을 댄다. 바이러스가 소멸되길 기다린다는 것이다.

송씨는 올해 초까진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루 두 번씩 15분 정도 외출했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 유행이 본격화한 후에는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 일상 회복 단계에 들어선 현재도 가정에서 보육하고 있다. 지난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는 하원한 아이를 박박 씻기는 바람에 피부에 생채기가 날 정도였다. 이를 본 남편이 “차라리 내보내지 말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가족들도 송씨의 성화에 손잡이, 식기류 등을 만질 때 비닐장갑 2장을 겹쳐 착용하고 있다. 휴대전화는 알코올 솜으로 수시로 닦으며 사용하다가 현재는 아예 비닐봉지에 넣어 사용한다고 했다.

남편의 권유로 지난해 11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은 송씨는 오염강박 진단을 받았다. 아이에게서도 오염강박과 초기 우울증 증상이 발현됐다. 아이는 샤워 후에도 “다시 씻겨 달라”고 떼를 쓰거나 “방이 더럽다”며 매트를 깔아 달라고 우는 모습을 보였다.

오염강박 진단을 받은 최미연(30·가명)씨 사례도 비슷하다. 어느 날 자신이 만든 ‘청결 수칙’을 지키지 않은 아이에게 불같이 화내는 자기 모습을 발견하곤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코로나19 유행 후에는 수칙도 하나둘 늘어났다. 급기야 아이 장난감, 생수병 등 씻을 수 있는 물건은 모두 비누로 세척한 뒤 사용하는 지경이 됐다. 아이 그림책도 소독약으로 여러 번 닦은 뒤 볼 수 있게 했다. 최씨는 “내가 정한 원칙을 아이가 따르지 않으면 불안감이 들어 화를 냈다”며 “아이에게 ‘코로나가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말해주고 있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고 털어놨다.

끝나지 않는 ‘오염강박’

코로나19로 인한 오염강박은 바이러스가 거쳐간 후에도 남아있다. 완치됐어도 재감염 우려 때문에 다시 오염 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주연(25·가명)씨가 그런 경우다. 평소 청결하다는 평가를 받는 정도였던 이씨는 임신 뒤 유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각별히 감염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손을 너무 자주 씻어 빨갛게 살갗이 트고 손이 닿는 곳마다 소독약을 문질렀다. 욕실 문고리는 너무 심하게 소독약을 문질러 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임신 6개월째인 지난 2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이후 완치됐다. 완치 후에도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줄지 않았다. 외부와의 소통도 아예 끊었다. 산부인과에 가기 위해 외출하는 날이면 긴팔 티셔츠 안에 손을 넣어 숨기고 그 위를 비닐장갑으로 감싼 뒤에야 현관문을 나선다고 한다. 남편의 권유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은 이씨는 임신부인 탓에 약물치료를 미루고 현재 인지행동치료만 받고 있다.

이씨 남편은 “코로나가 완치되면 사라질 증상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모두가 일상을 되찾아도 우리만 돌아가지 못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