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사태는 국제투자분쟁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분석과 판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더 큰 문제는 이후 ‘제2의 론스타’ 사태를 막을 투자협정조약 개정 등 보완책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이라도 2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는 론스타 사건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거액의 국가배상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4조6600억원의 배당·매각 이익을 챙기고 2012년 한국 시장을 떠났다. 단기간에 막대한 이익을 보고 철수한 것은 투기자본의 본질이지만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 등으로 정부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 론스타는 이를 근거로 2012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걸었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마냥 한국 정부에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론스타가 청구한 배상금액은 46억7950만 달러(약 5조8200억원)다.
한국 정부가 론스타 사태 빌미 제공?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매각 명령을 늦추는 바람에 제때 외환은행을 팔지 못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당시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등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대한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정부는 이 때문에 즉각적인 매각 승인이 불가능했다고 반박한다. 이를 두고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할 때 국내 사정을 이유로 허가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정부가 몰랐는지, 혹은 알았는데도 정치적 판단에 따라 매각을 미뤘는지에 대한 책임소재를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5일 “매각 지연 자체가 협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인지했는지, 그 위험성에 대한 분석이 정치적 고려 때문에 왜곡됐는지를 따져야 한다”며 “당시 주무부처 장관이나 책임자는 그런 우려 목소리를 내야 했다”고 말했다.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했을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현재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지명된 추경호 후보자였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인수 자격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각 과정에서 다시 문제가 불거졌고, 지연 소송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론스타가 산업자본이기 때문에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었다는 점을 소송 과정에서 증명하면 되는데, 이는 곧 정부가 론스타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잘못을 시인하는 셈으로 정부 대응이 미진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2007년 3월 감사보고서에서 “재정경제부는 론스타의 은행 인수자격 문제 해소방안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확인도 없이 안일하게 업무를 추진했다”며 “론스타가 합작 투자를 통해 인수자격 문제를 해소할 것처럼 보고하고, 협상 결렬에 대비한 대안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마추어식 ISD 대응…전문성 부족
정부의 ISD 대응이 아마추어식이었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법무부 등 6개 부처로 구성된 ISD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는 2016년 1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지난 8일 열릴 예정이던 론스타 ISD 최종변론이 우리 정부를 대리하는 로펌 소속 주임 변호사의 교통사고로 6개월 연기됐다”고 밝혔다. ISD 자체 전문가 육성 없이 외부 로펌에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중재 대리인으로 외부 로펌을 선임하면서 그간 지출된 정부 예산도 500억원에 달한다.
최 교수는 “그동안 우리 정부는 아마추어적이고 임기응변식 협상 관행을 되풀이했다”며 “투자협정 협상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자문체계를 전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을 주장하며 분쟁을 제기하는 등 사건이 잇따르자 ISD 주무부처를 법무부로 통일했다. 2019년 4월에는 관계부처 실·국장이 참여하는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을 구성했고, 이듬해에는 법무부 국제분쟁대응과를 만들어 실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차원의 국제분쟁 전문가 양성 체계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법무부는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국제투자분쟁 대응 관련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며 법무부 내 국제분쟁실 또는 국제분쟁국 신설 의견을 제시했다.
론스타 사태를 계기로 오래된 투자 보장 협정조약을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협정조약을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분쟁 위험성을 그대로 두게 돼 또 다른 대규모 소송에 얽힐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앞서 “한국은 서류 회사의 ‘혜택 부인’ 조항이 빠진 투자협정을 99개 맺어 론스타 사태가 발생했다”며 “제2의 론스타 사태를 막기 위해 한국이 체결한 99개 투자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론스타 건을 맡았던 관료들이 계속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 상황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당시 법률 전문가나 국제법 전문가한테 자문하는 등 제대로 대응을 못 했던 사후적 책임은 당연히 물어야 한다”며 “당시 매각을 추진했던 사람들이 자리를 옮긴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파급 효과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에 있었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일을 맡아야 하는데, 자꾸 옮겨 다니니까 책임소재도 불분명해지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