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검수완박 반대하면서 특사경 도입 주장은 모순”

입력 2022-04-26 04:04 수정 2022-04-26 04:04
지철호 전 공정위 부위원장이 25일 서울역 회의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 전 부위원장은 “검찰에 지나치게 치우쳐있는 수사권 체계의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한형 기자

지철호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검찰과 악연이 있다. 검찰은 2018년 당시 지 부위원장을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지 전 부위원장은 기소된 이후 직무정지까지 당했지만 꿋꿋이 버텼고, 1·2·3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명예롭게' 퇴임한 뒤 '전속고발 수난시대'란 책을 펴내며 검찰의 표적수사 행태를 비판했다.

25일 서울역사 내 회의실에서 만난 지 전 부위원장은 "검찰이 검수완박(검찰수사권완전박탈)을 반대하면서 공정위에 대해서는 특별사법경찰 도입과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수완박이란 말이 나온 원인은 표적수사 등 검찰의 잘못 때문"이라며 "자신들은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공정위는 제대로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권한을 뺏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 전 부위원장은 전관들이 로펌에 갔다 다시 공직으로 돌아오는 회전문 인사 논란에 대해서도 "공직에 돌아올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김앤장 같은 데는 가면 안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만난 사람=이성규 경제부장

-정치권에서 검수완박 논란이 거세다.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현행 수사권 체계는 조정돼야 한다.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 공소유지까지 하는 것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준 것이다. 내가 겪은 사례를 봐도 검찰이 모든 것을 쥐고 있으니 표적수사, 별건수사 등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경제사건인 공정위 고발 사건의 경우 공정위가 행정절차를 통한 조사에서 중요 증거나 사실관계가 대부분 정리된 상태다. 이를 바탕으로 형사절차를 진행하는 데 이를 검찰이 아닌 경찰이 맡아도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

-검찰은 전속고발제 폐지 대안으로 공정위 사건에 대한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도입을 얘기하고 있다.

“특사경 도입은 전속고발제도 폐지보다 더 개악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특사경이 도입되면 경제활동에 무분별한 형사 사건화가 진행될 소지가 크다. 또 현재 공정위 공무원에게 조사권이 법적으로 부여된 상황에서 특사경은 옥상옥(屋上屋)일 뿐이며 공정위 조직과 기능의 위축을 초래해 경쟁정책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다.”

-검사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검찰 출신이 공정위원장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고 있다.

“공정위 업무는 경쟁정책 추진과 법 위반 사건처리로 나눠지는데 검찰 출신 인사는 경쟁이나 소비자 정책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 검찰 출신이 위원장으로 와서 공정거래 정책은 사라지고 사건 처리에 전념하게 되면 (공정위는)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공정거래 사건은 법대로만 처리하면 안 된다. 예를 들면 기업 간 거래에서 거래 거절은 많다. 여기서 정당한 것과 부당한 거래 거절을 따져야하는데 이런 것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맞다.”

-엄격한 법 잣대를 적용해 불공정행위 기업을 단죄하는 것은 중요한 일 아닌가.

“공정위가 과징금을 매겨봤자 그 사건에 대해서만 파급효과만 있다. 하지만 어떤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제도를 만드는 정책을 잘하면 그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공정위가 정책 위주로 가다가 혹시 문제가 생기면 사건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했다. 노무현정부 때부터 공정위 법 운용이 정책에서 사건 중심으로 이동했고, 이후 이런 경향이 더욱 강화됐다.”

-그럼 공정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현재 공정위는 신고 들어오는 사건 처리에 급급하다. 예를 들면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데 대기업들이 납품 단가를 올리지 않아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 1~2개 사건 조사해서는 고쳐지지 않는다. 가이드라인을 만들든지 해서 정책적으로 제도적으로 납품단가를 후려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게 공정위가 할 일인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반성해야 한다.”

-현 정부에서 추진한 온라인플랫폼법도 자율 규제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온플법도 민간자율, 규제 최소화, 관련 부처간 역할분담이라는 3가지 원칙에 따르는 게 맞다. 플랫폼 생태계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역동성이 발휘되도록 규제를 최소화하고, 자율 규제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

-퇴직 한 지 2년이 가까워졌다. 다시 공직으로 갈 생각은 없나.

“퇴직하고 다시 공직에 돌아갈 생각이 있다면 김앤장 같은 데는 가지 않는 것이 맞다. 돈도 벌면서 공직 욕심을 내는 것은 과하다. 전관들이 사회 원로로서 존경을 받으려면 스스로 처신을 잘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 공직은 안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1987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실 근무를 시작으로 30년 간 ‘공정위맨’으로 살았다. 가장 잘했던 공정위원장을 한 분 꼽는다면.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6년 김인호 위원장이 생각난다. 정책 마인드가 강했고, 실제 공정거래법 개정도 이뤘다. 부처 간 갈등이 있을 때 설득도 잘했다. 당시 현직 국장 2명이 구속되는 등 검찰과 관계도 최악이었는데 조직을 잘 추슬렀다.”

-새 정부 공정위가 우선적으로 추진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상생 협력하고 동반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주는데 공정위가 역할을 해야 한다. 이건 법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공정위가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제값 받고 납품할 수 있고, 대기업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정리=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