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역 진입할 때쯤 비 그치는 등 1080㎞ 피란길 내내 보호하심 경험”

입력 2022-04-26 03:05
서진택 선교사는 지난 19일 고향 하르키우를 떠났다. 서 선교사가 자신의 차량에 실린 비상식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피란길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전도지와 함께 비상식량을 나눠줬다. 서진택 선교사 제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55일째 되던 날인 지난 19일(현지시간) ‘고향’인 하르키우를 떠났다고 했다. 끝까지 고향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전쟁이 시작됐을 때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우크라이나의 부활주일인 24일을 앞두고 서진택 선교사가 국민일보에 보낸 편지엔 피란길에 오른 19일부터 22일까지의 고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소속 서 선교사는 “하르키우에서 속히 빠져나오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피란길에 올랐다”고 전해 왔다. 그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12살 때 우크라이나에 왔고 2013년 현지 여성과 결혼했다. 아버지의 묘가 있고 아내의 가족이 있는 우크라이나 북동부 도시 하르키우는 그에게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피란길엔 아내와 두 아들, 장인 장모 등이 함께했다.

피란길 첫날인 19일 서 선교사 일행은 드니프로강을 건너 360㎞를 달려 중부 도시인 올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숙소는 올렉산드리아 승리교회였다. 이곳에서 이들은 지난 2월 24일 러시아 침공 이후 55일 만에 ‘일상’을 경험했다.

그는 “밤 11시까지 집 안에서 전등불을 켤 수 있었고 우크라이나 군용기가 날아가는 소리는 들리지만 포격 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면서 “거리의 신호등이 작동돼 빨간불을 기다리고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피란길 여정은 이튿날에도 계속됐다. 중간 목적지는 우크라이나 서남부 빈니차였고 숙소는 생명교회였다. 420㎞를 달려 도착한 후 이틀을 보냈다. 서 선교사는 “전쟁 기간 두 아들은 또래가 없어 외로워했는데 이곳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나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이들은 또다시 5시간20분을 달려 400㎞ 떨어진 서부 지역 이바노프랑키비츠에 도착했다.

이바노프랑키비츠를 최종 목적지로 결정한 이유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피란을 요청해 온 사역자 때문이다. 서쪽 지역 중 하르키우와 가까운 것도 선택의 이유가 됐다. 하르키우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1080㎞다.

피란길 내내 하나님의 보호하심도 경험했다고 전했다. 드니프로강을 건너기 전까지 내리던 비는 강을 건넌 뒤 동쪽보다 안전한 곳에 진입할 때쯤 그쳤다. 서 선교사는 “안개가 끼고 비가 올 때는 (러시아군이) 폭격하는 게 훨씬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란길에도 섬김의 자세는 잃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검문하는 곳을 지날 때면 갖고 있던 통조림이나 과자 등 비상식량과 전도지를 전달했다. 서 선교사는 “우크라이나 부활절인 24일 안정을 취하고 기도했다. 서쪽에서 할 수 있는 사역을 살펴보려고 한다”며 편지글을 맺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