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가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1990년 미국 자본의 상징인 맥도날드가 러시아(당시 소련)에 입점한 것은 세계화의 상징처럼 일컬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맥도날드가 32년 만에 철수했고, 이는 세계화의 종식 즉 탈세계화의 상징이 됐다. 나이키는 러시아 내 매장 116곳을 폐쇄하고 온라인 판매도 중단했다. 이케아는 영업과 수출입을 모두 멈췄다. 코카콜라, 구글, 애플, 인텔, 테슬라, GM 등 300여 개의 다국적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완전히 중단하거나 부분적으로 중단했다. 경제 제재뿐만 아니라 세계 소비자들로부터의 평판 관리를 위해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세계화의 종식은 이미 진전되고 있던 현상이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상품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960년 16.6%에서 2008년 51.2%로 상승했다. 이때는 냉전이 종식되고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른바 보호무역주의 시대에 이르러 세계화 추세는 꺾이기 시작했다. 그 비중은 2020년 42.1%까지 떨어졌다. 주요국들이 자국 경제를 부양시키기 위해 리쇼어링을 주요 산업정책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 전쟁과 코로나19는 탈세계화를 급진전시켰다.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한 미국의 경제 제재는 양 진영의 우방국 간 블록화를 초래했다. 대표적 예로, 중국은 미국 우방국인 호주로부터 석탄 수입을 금지했고, 한국으로의 요소 공급을 차단했다. 더욱이 코로나는 대규모 공급망 차질을 빚었고, 해외 생산 거점을 두는 것이 더는 유리하지 않음을 깨달은 기업들이 리쇼어링을 적극 선택했다. 정책적으로도 위생·방역·의료 용품만큼은 자립화해야 함을 지각한 주요국의 움직임이 글로벌 밸류체인의 지각 변동을 가져왔다.
공급망 병목 현상은 세계화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2020년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을 경험한 자동차 강국들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면서 자립화를 추진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같은 고부가가치 영역을 제외하고 생산 및 시험 등의 공정을 해외에 위탁하면서 세계화에 기여해 왔는데, 이제 반도체의 ‘A to Z’를 다 미국에서 하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2022년 제조기업들의 최대 과제가 공급망 대란 문제인 만큼 각 기업은 원자재, 소재, 부품 등을 스스로 조달하는 내재화 전략을 꾀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화의 종식을 알리는 포성이 됐다. 전쟁이 끝날지라도 미·러 갈등은 미·중 패권 전쟁과 맞물려 탈세계화를 부추길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정지하는 결의안을 가결할 때 양쪽 진영이 쪼개졌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은 러시아 퇴출에 찬성했지만 중국 브라질 인도 등의 신흥국들은 반대 혹은 기권을 표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요 20개국(G20)은 선진국과 신흥국의 협의체로 수십 년간 세계 경제 질서를 이끌어 왔지만, 러시아의 G20 퇴출에 엇갈린 입장을 보여 해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세계화의 종식에 대응해야 한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탈세계화라는 구조적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출 측면에서도 중요하겠지만 원자재나 부품 수급이라는 면에서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제2의 요소수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탈세계화는 식료품 원자재를 비롯해 에너지 및 광물 자원의 수급난을 부추길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대하고 시급한 정책 과제로 해외자원개발 사업 및 자원 외교를 추진해야만 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