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대학’만 연명할라… 대학 재정, 지자체 이양 논의

입력 2022-04-25 00:05

새 정부가 지방대학 육성 정책을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수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자체마다 고등교육위원회(가칭)를 설치하고 지역 맞춤형 정책을 통해 지방대를 살린다는 구상이다. 고등교육 전반을 염두에 둬야 하는 교육부 중심의 지방대 육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인데, 예산 나눠먹기 내지 ‘좀비대학’을 연명케 하는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4일 국민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교육부는 다음 달 초 발표되는 새 정부 고등교육 분야 국정과제 중 지방대 육성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골자는 지자체에 고등교육위를 두고 중앙정부 권한과 기능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지자체장 책임하에 고등교육위가 지역 산업과 연계한 맞춤형 대학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통해 충분한 고등교육 기회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지역 정주 여건을 개선한다는 취지다. 재정 지원의 경우 그동안 ‘교육부→대학’에서 ‘교육부→지자체→대학’으로 변경하는 방식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자체장이 4년마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선출직 공직자란 점이다. 예산 나눠먹기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부실대학 정리도 어려울 수 있다. 전북 남원시 서남대의 경우 학교가 폐쇄된 뒤 대학 주변 상권이 직격탄을 맞았다. 주민들은 “그나마 있던 젊은 사람들이 대학 문 닫으면서 사라졌다”며 서남대 관계자와 함께 교육부 앞에서 규탄 집회도 열었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대학 관계자는 “표가 중요한 정치인이 대학에 칼을 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대 미달 사태로 본격화된 ‘대학 특성화’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대학마다 상대적 우위가 있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는 생존 전략인데, 교육부가 그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다. ‘내 전공을 축소할 수 없다’는 교수 사회의 반발이 걸림돌이었으나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 문을 닫게 둘 수 없는 지자체장이 재정 지원의 키를 쥐게 되면 현실에 안주하는 쪽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지자체장 입장에선 재원 배분에서 차등을 두는 것 역시 표를 의식하면 쉽지 않다.

교육부 입장에서도 권한이 축소되는 것이어서 달갑지만은 않다. 반면 그동안 골치 아팠던 대학 구조조정과 지방대 살리기 책임을 지자체와 나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방대를 학생 선택에 맡기는 ‘시장 원리’를 통해 정리하려고 하면 지방대는 물론 지역 사회가 강력 반발하고, 수도권 대학이 고통을 분담하는 쪽으로 정책을 설계하면 수도권 대학들이 반발하는 등 결국 모든 비난이 교육부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대학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일종의 탈출구가 생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 다른 지방대학 관계자는 “지자체장 교체 시기마다 대학들이 홍역을 치를 수 있으므로 세심하게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