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취임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90㎝의 장신이다. 키가 커서 그런지 이 총재의 취미는 농구였다. 미국 하버드대 유학 시절에도 그는 농구를 즐겼다고 한다. 적어도 몸싸움에서는 밀리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총재는 테니스와 배구 등 구기 종목을 즐기며 건강관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금융권에서는 그의 건강을 놓고 이런저런 말이 나돌았다. 소문 중에는 이 후보자가 지난해 코로나19에 감염돼 위험한 상황에 처할 뻔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다이내믹한 운동을 즐기던 그가 코로나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는 말은 믿기 어려웠다.
만에 하나 한은 총재가 건강 문제로 자리를 비운다면 그 자리는 누가 대신할까. 과거 한은법에는 ‘부총재는 총재가 사고가 있을 때에는 (총재의) 직무를 대행한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1997년 말 법 개정 과정에서 이 조항이 삭제됐다. 당시 추진됐던 한은법 개정안에는 총재의 직무대행 문제와 별개로 정부 입김을 강화하는 내용이 있었다. 물가안정 목표를 못 지킬 경우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의장 해임을 추진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조항까지 포함돼 있었다. 한은 직원들은 철야농성을 벌이며 개악에 반대했다. 결국 한은 입장이 반영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중앙은행 독립성은 지켜질 수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총재의 총재 직무대행을 규정한 조항은 개정 과정에서 삭제됐다. 97년 외환위기가 터진 어수선한 때 법 개정을 서두르다 실수로 이 조항을 빠뜨렸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된 얘기는 아니다.
현재 한은법엔 ‘부총재는 총재를 보좌한다’고 돼 있다. 부총재의 대행 업무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한 규정은 없다. 물론 총재가 잠깐 자리를 비운다고 한은이 할 일을 못 하는 건 아니다. 이 총재 취임 이전인 ‘총재 공백’ 상황에서 한은은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리는 결정을 내렸다.
한은 총재의 권한은 강력하다. 중대한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금통위를 거치지 않고서도 통화신용정책에 관한 긴급 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 불안한 국내외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그 어느 때보다 한은의 물가안정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한은 총재에게는 건강이 담보하는 건강한 판단력이 필수인 셈이다.
이 총재는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의 건강 문제에 관한 질의에 “(지난해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6~7개월 투병 생활을 해서 지금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삶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감사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금 현재로는 (건강이) 완벽한 상태는 아니다”라면서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풀타임으로 일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또 86년 미국 유학 시절 ‘슬관절인대재건술 후유증’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농구를 하다가 왼쪽 무릎을 다친 후 국내로 돌아와 군 면제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와 관련한 병원 진단서나 과거 수술 기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론스타 사태 책임론도 간과할 수 없다. 이 총재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없는 산업자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덮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점을 자인한 자료를 한국 금융 당국에 전달했던 2008년 당시 그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이 총재의 청문회는 몇몇 의혹에도 불구하고 우호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됐다. 이런 배경에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등을 지낸 그의 전문성이 있었다. 다른 공직 후보자에 비해 느슨했던 청문회를 통과한 이 총재가 어떤 역량을 발휘할지 기대된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