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오름세에 ‘고지서 없는 세금’으로 불리는 인플레이션 공포까지 가세하면서 서민 시름은 깊어만 간다. 인플레가 고지서 없는 세금으로 불리는 데는 물건값에 붙는 부가가치세도 한몫한다. 예전엔 부가세를 가격과 별도로 표시하는 곳이 많았으나 깨알 같은 글씨 등으로 소비자를 현혹한다는 이유로 2013년부터 금지시켰다. 그런데 세 부담을 은폐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엔 ‘손 안 대고 코 풀 듯’ 세수를 늘릴 수 있게 됐다. 세 부담자와 납세 주체가 다른 간접세의 성격상 재정 부족에 시달리는 당국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부가세율을 건드리려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부가세율(19.3%)이 한국(10%)의 배 가까이 높은 것은 고소득층 압력이 심한 법인·소득세 대신 부가세를 희생양으로 삼아 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부가세가 만만한 세금은 아니다. 잘못 건드렸다가 동티가 나는 정도를 넘어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1977년 취약계층 지원 명목으로 도입됐지만 오일쇼크 와중에 서민경제 파탄 주범으로 지목돼 박정희정권의 몰락을 재촉한 부마항쟁의 빌미가 됐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자민당 정권은 소비세(부가세)도입 및 실행으로 1986년과 1989년 총선거에서 연거푸 참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물가 관리가 존재 이유인 한국은행의 신임 이창용 총재가 부가세율 인상을 거론하고 나서 이목을 끈다. 이 총재는 지난 18일 국회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에서 “국가부채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증세 등 세수 확충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복지재원 연계 방안을 전제로 부가세 인상을 제시했다. 이 총재는 직전 국제통화기금(IMF) 국장 때부터 위험수위로 치닫는 국가채무의 관리 필요성과 이를 위한 세수 증대를 주장해왔지만 특정 세목을 지목한 것은 이례적이다. 물가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적절하다는 그의 입장이 물가 인상 요인인 부가세율 인상과 충돌하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