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우크라 전쟁과 한국 외교안보

입력 2022-04-25 04:08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와 미국·유럽 간 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들고 세계 경제와 국제 질서 전반을 흔들고 있다. 더구나 한·러 관계를 중단시키고 한반도 주변 신냉전 질서를 형성하는 등 한국의 안보에도 심대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한국의 외교안보와 관련해 두 가지 사항이 주목된다. 먼저 전후 국가별 예상 손익 계산이 주는 함의다. 러시아는 상처 많은 승리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차지하거나 크림반도까지의 육로를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군사적 명성은 크게 손상됐고, 전범국 낙인이 찍혀 국가 이미지가 실추했으며, 최고도의 국제 제재와 에너지 수출 축소 등으로 커다란 경제적·재정적 손실을 볼 것이다. 반면 미국은 상당한 이익을 볼 것이다. 나토 유럽 회원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같은 중립국들이 나토로 몰려들고 있어 유럽 국가들 국방비 증액도 손쉽게 이뤄낼 뿐 아니라 군수산업 대호황과 셰일가스 유럽 수출도 얻어낼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영토를 빼앗기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당했으며 국토의 상당 부분이 파괴돼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다. 침략자 러시아도 상당한 손해를 보겠지만, 상대적 약소국으로서 자강을 경시하고 널뛰기 국가 전략을 구사한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막지 못해 참혹한 피해를 볼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우방인 미국은 우크라이나 핵 포기 시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보다는 전쟁 발발을 지켜보다가 자국 국익 극대화를 실현하는 모습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달리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을 맺고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미국이 우크라이나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3차 대전이 우려된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무기 지원에 그치고 병력은 전혀 지원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제 북한이 핵과 각종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미국이 핵 공격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에게 확장억지력을 제공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자주 국방력을 강화하고 확실한 핵 억지를 확보하며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등 자강력을 키우는 한편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면서 가능하다면 다른 강대국들과도 우호 관계를 갖는 것이 현명하다. 전작권을 환수하면서도 한·미 간 신뢰를 확보하는 슬기로운 외교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의 국가안보 상황도 상당히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대러 제재에 발맞춰 우리 역시 제재에 가담해 한·러 관계는 거의 중단됐고 러시아와 관련된 많은 기업도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 반면에 북·러 및 북·중 관계는 더 강화되고 있다. 북한은 북·중·러 대 한·미·일 간 신냉전 구도가 조성되는 것을 중국 및 러시아와 협력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대남·대미 군사 도발을 감행하면서 핵과 미사일 군사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가 국력이 기우는 국가가 더 모험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이 러시아뿐 아니라 북한의 행동에서도 현실로 나타날 우려가 있다. 또 향후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될 때 한·중 우호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도 도전적 과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제 질서 변화를 면밀히 분석하고 현명한 국가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국민 통합의 리더십으로 내실을 다지고 한 치의 빈틈없는 대북 안보 태세를 갖추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진흥해 한·미 간 신뢰 동맹을 강화해야 하겠다. 아울러 모든 나라가 칭찬하는 평화와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모범국이 된다면 이 어려운 국가안보 위기 상황을 글로벌 중추 국가로 발돋움하는 기회로 전환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