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누구를 위하여 개혁은 울리나

입력 2022-04-25 04:05

‘검수완박’ 정국이 마지막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더 얘기할 생각은 없다. 검수완박은 이미 토론과 설득의 영역을 넘어섰다. 힘과 이권, 야합의 세계에 더 가깝다. ‘닥치고 검수완박’을 외치는 목소리와 ‘검수완박 속도조절’을 외치는 목소리는 서로 다른 별 사람들처럼 결코 만나지 않는다. 한쪽이 다른 쪽을 설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17세기 사람들에게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납득시키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특이한 것은 검수완박 시행 시 나타날 결과에 대한 예상이다. 검수완박 찬반을 떠나 법조계는 공통적으로 ‘변호사의 영역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애·여성·아동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는 김예원 변호사는 말한다. “요즘 피해자가 경찰서 가면 ‘사건을 범죄별로 쪼개 오라’고 해요. 뭐 성범죄 폭행 이런 혐의가 대여섯 개라면 강력팀 여성청소년팀 이런 식으로 나뉘는데, 고소장을 혐의별로 나눠서 접수하라는 거예요. 변호사들한테도 그러는데 일반인이 가면 제대로 대처나 할 수 있겠어요?”

최근 만난 정부 관계자는 “피해자 변호사의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했다. “검사가 수사를 못 하면 경찰 하나만 남잖아요. 업무에 허덕이는 경찰이 ‘증거 자료를 갖고 오라’고 하면 피해자는 변호사를 고용해서 직접 자료를 수집하고 제시할 수밖에 없어요. 예전엔 검사가 경찰에 ‘이거 저거 수집해 와라’ 그러면 경찰이 툴툴대면서도 했는데, 이제 그걸 국가에서 안 해주는 거죠.”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피해자가 변호사를 쓰는 일은 점차 당연한 일처럼 자리잡고 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같은 대형 금융사기 사건에선 피해자 대신 싸워주는 금융 전문 변호사들이 활약했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다. 피해자들이 돈을 냈다. 검찰 증권범죄수사단 같은 대형 수사단은 사라졌고, 일선 경찰은 수조원대 사기범을 상대할 여력이 없다. 결국 답답한 사람이 돈 주고 법률 전문가를 사서 사기범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피해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돈까지 써야 한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고소장만 써내면 수사기관이 잡아주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사법개혁의 역사를 오래 지켜본 법조계 관계자는 이렇게 촌평했다. “사법개혁 역사는 결국 변호사 일거리 창출로 이어지는 역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초기 사법개혁은 소수의 ‘사법 신성가족’을 해체한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2009년 전국 25개 로스쿨이 개원하며 법조인이 쏟아졌다. 그 뒤 나온 개혁 정책들은 대체로 이들을 활용하기 위해 설계됐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가령 피의자 조사 시 변호사가 동석하는 제도를 보세요. 폭행 사고를 막겠다는 건데 사실 CCTV 하나만 달면 되거든요. 뭐 인권을 보장해 주겠다, 변호사에게 도움 받을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하는데 뒤집어 말하면 결국 변호사를 선임하라는 얘기예요.”

피해자 국선변호인이 있지 않냐고? 현재 전국 23명이고, 연내 12명 더 늘어도 35명에 그친다. 그마저도 성폭력·아동학대·장애인 피해자에 한정한다. 대다수 국선변호인은 낮은 보수와 과도한 사건에 신음한다. 답답한 피해자부터 사선변호인을 쓰는 구조다. 고(故) 이예람 중사처럼 말이다. “국선변호인은 장학금 같은 거예요. 찔끔찔끔 주고, 모두 받지도 못해요.”

변호사는 나쁜 이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살면서 되도록 안 만나는 게 좋다는 뜻이다. 검수완박이든 검찰 정상화든 검찰 해체는 변호사 시장의 고급 인력 확충으로 이어질 것이다. 검찰 대안이라는 한국형 FBI(미국 연방수사국)를 검사로 채울 순 없는 노릇이다. 국민을 위해 싸우라고 국가 세금으로 키운 고급 인력이 민간 시장으로 넘어간다. 수년 전 ‘법원 개혁’ 정국에서 법원 내 실력 있는 법관들이 자의반 타의반 대형 로펌으로 건너간 것과 겹치는 대목이다. 개혁의 끝엔 무엇이 있는가. 사법개혁에 과연 국민이 있기는 한 건가. 이것도 변호사를 선임해 물어봐야 하는 건가.

양민철 사회부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