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아이에 관한 네 가지 에피소드

입력 2022-04-25 04:07

1. 우리는 복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마다 가장 많이 의식하는 정체성은 따로 있을 것이다. 그것은 여성일 수도 있고 엄마일 수도 있고, 노동자일 수도 있고, 동성애자일 수도 있고, 환자일 수도 있고, 대한민국 국민일 수도 있고, 부대원일 수도 있고, 이민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 주변에 자신을 ‘아이’로 의식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 있게 그러나 동시에 자신 없게 자신이 보호받아야 할 피부양자이며 피훈육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비록 스무 살이 넘은 나이지만 말이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아이는 자신을 얼마나 아이라고 인식하고 있을까?

2. 친구로부터 임신 소식을 들었다. 나처럼 잔병치레가 잦은 친구여서 걱정이 많았다. 친구의 어머니는 정말 기뻐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시골 어디에 자리를 잡아 당신이 아이를 키워 주시겠다고 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미안한데 나를 좀 더 키워주는 건 어때?”

3. 언젠가 미국 뉴욕 출신의 미술가 친구가 말했다. “어릴 때는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듣고 이제는 어린애 같다는 소리를 들어. 돌이켜보면 난 언제나 같은 사람이었던 거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언제나 욕을 먹어. 애처럼 일하지 않고 노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아이라는 소리에 주눅 들지 말자는 거야. 물론 우리가 운동 기구나 세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4. 얼마 전 어린 시절의 사진 앨범을 들춰 볼 일이 있었다. 유치원에서 찍은 사진 속 내 얼굴은 거의 경직돼 있었다. 한복을 입고, 비닐로 만든 인어 공주 옷을 입고, 산타의 품에 안겨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반면 집에서 찍은 사진은 심한 말썽꾸러기의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부분 윗도리를 벗고 있으며 콧구멍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내 이중 생활의 역사는 적어도 20년은 지난 것이며 산타를 믿지 않는 어린이에게 기념 촬영은 고역이었던 것이다.

이다울 작가